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한국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세계 3대 산유국이자 곡창지대인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전쟁이 터지면 유가와 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의 물가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무역수지 악화는 물론 경제 성장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804원으로 1800원 선을 돌파했다. 전국 휘발유 가격도 ℓ당 1739원으로 한 달 전(1648원)보다 100원 가까이 올랐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유류세를 인하했지만 국제 원유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국내 기름값도 동반 상승한 것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기준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95.39달러를 기록했고, 국내로 들여오는 원유 기준인 두바이유 현물 가격(싱가포르거래소 기준)도 배럴당 91.73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현실화하면 유가는 더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충돌로 러시아산 석유·가스의 대규모 공급 중단이 발생하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폭등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러시아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 3대 산유국으로 2020년 기준 전 세계 석유 수출량의 11%를 차지한다.
천연가스 가격도 뛸 가능성이 크다. 유럽에 공급되는 천연가스의 3분의 1은 러시아산인데,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유럽의 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뒤이어 아시아 시장의 가스 가격도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 우려도 큰 부담이다. ‘유럽의 빵 공장’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12%를, 옥수수 수출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이미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국내 밀가루 가격은 각각 8.8%, 12.1% 상승했다. 밀가루값이 더 오르면 그만큼 빵값, 라면값, 국수값 등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도 줄줄이 오를 수밖에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 통화 당국은 유동성을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경제 성장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10% 오르면 경제성장률이 0.12%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3.1%로 잡은 정부로서는 3%대 성장률 달성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에너지와 농산물 등의 수입 물가가 오르면 무역수지도 악화를 피할 길이 없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무역수지는 16억79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에도 한국의 무역수지는 각각 5억 달러, 48억 달러 적자였다. 이달 무역수지가 적자로 확정될 경우 3개월 연속으로 2008년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