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중·러 밀월의 한계

입력 2022-02-23 04:02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20년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느닷없이 중국과의 군사동맹 이야기를 꺼냈다. 푸틴은 러시아 전문가 모임에서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배제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중·러가 상호방위 개념이 적용되는 군사동맹으로까지 나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미국의 압박과 견제 속에 두 나라가 얼마나 밀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줄곧 러시아를 지지했다.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면 중국은 “합리적인 안보 우려로 존중돼야 한다”고 호응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협의체 ‘쿼드’와 안보 협력체 ‘오커스’를 인도·태평양판 나토로 여기는 중국으로선 러시아 편에 서는 것이 기존 태도와 자국 이익에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중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해도 러시아 편에 설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대만 문제가 걸린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대만 독립을 반대하고 필요하다면 무력 통일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대만 문제를 언급만 해도 내정간섭이라며 발끈한다. 그런 중국이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세력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 명목으로 군대까지 보내기로 한 러시아에 동조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내정간섭을 용인하는 입장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무엇을 하든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은 현재에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게 자연스럽다. 아무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이래 푸틴 대통령을 30번 넘게 만나고 보드카와 캐비어를 함께 즐기는 사이라 해도 협력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는 양국 관계가 국제사회에서 서로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신뢰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서방 세계와 러시아가 전쟁을 벌일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민주국가를 자임하는 중국이 국제법을 위반한 러시아와 한배를 타기엔 정치적 외교적으로도 부담이 너무 크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민주주의 대 독재’ 싸움으로 보고 중국과 러시아를 한데 몰아붙이고 있다. 미·중 관계를 잘 아는 한 인사는 “미국은 러시아를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나라로, 중국을 기존 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악용하는 나라로 보고 있다”며 “그런데도 중국을 더 큰 위협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유럽의 질서를 소련 붕괴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푸틴의 야심을 그냥 두고 보는 것이 자국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유럽과의 경제적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유럽연합(EU)의 최대교역국이 됐다. 중국과 EU는 7년 협상 끝에 2020년 말 체결한 포괄적 투자협정 비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슬슬 러시아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 직전인 19일 열린 뮌헨 안보회의에서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 발언이 신호탄이었다. 그는 “각국의 주권, 독립, 영토 완전성은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22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통화하면서 “중국은 자신의 옳고 그름에 따라 각국과 접촉할 것”이라고 했다. 어찌 됐든 중국은 북핵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중요한 변수다. 중국 견제에 쏠렸던 미국의 힘이 러시아로 분산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량 구매하는 식으로 서방의 대러 제재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권지혜 베이징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