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터전’ 잃습니다.” 주5일 근무제 도입을 한창 논의하던 2002년에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이런 광고를 냈다. 경영계 등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법안이 통과하고도, 주5일제가 완전 정착하는 데 약 8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주4일제가 떠오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26일 경기 부천시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노동공약을 발표하고 주4.5일제 단계적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도 “대한민국은 시간 빈곤사회”라면서 주4일제 도입 공약을 공식화했다. 이미 주4일제를 도입한 기업도 제법 있다.
주4일제를 찬성하는 쪽에선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 노동생산성 향상 등을 거론한다. 장시간 노동에 기반을 두는 노동시장을 개혁해 ‘시간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편에선 기업 비용 증가, 생산성 하락을 지적한다. 근로시간 축소가 영세업체와 비정규직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4일제 실험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 할까.
앞다퉈 주4일제 시행하는 기업들
프랑스 영국 아이슬란드 스페인 뉴질랜드 등에선 여러 기업이 주4일제를 이미 실시하거나 시범 도입 후 확대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인사관리협회 2019년 통계를 보면 미국의 전체기업 중 주4일제를 도입한 곳은 27%에 이른다. 일본 정부도 주4일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주4일제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에듀윌은 2019년 6월 ‘드림데이’라는 제도를 시작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 더 쉬는 주4일 근무체계로 직원들은 하루 8시간씩 주32시간을 일한다. 에듀윌에 따르면 초기에 업무 강도가 높았으나, 내부 시스템 개편과 일자리 나누기로 보완했다. 제도 시행 전 470명이었던 직원은 750명으로 늘었고, 매출은 연간 800억원대에서 1100억원대로 올랐다. 우려했던 부작용(생산성 하락, 일자리 축소 등)은 없는 셈이다.
SK그룹의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지주사는 2019년부터 격주로 주4일제를 시행 중이다. 우아한형제들은 2017년부터 월요일 오후 1시에 출근하는 4.5일제를 실시하고 있다. 핀테크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도 지난해 11월부터 금요일에 오전까지만 일하는 주4.5일제를 도입했다. 카카오게임즈는 매월 1회 실시하던 금요일 휴무제를 지난해 4월부터 격주로 늘렸다. 한 달로 치면 ‘주4.5일 근무’다. 금융권도 주4.5일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주40시간을 맞추되 유연근로제를 혼합해 1일 4시간 근로를 하고 다른 요일에 근로시간을 더해 운영하는 주 4.5일 근무제 실험을 예고했다.
“노동자 삶의 질 향상”
주4일제를 찬성하는 가장 큰 근거는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해 8월 성인 4155명을 대상으로 주4일제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결과, 83.6%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휴식권 보장과 워라밸 정착(72.4%), 충분한 재충전을 통한 업무 효율 향상(51.7%), 건강 관리(32.1%), 휴일 증가로 내수 진작(21.2%), 자녀 돌봄(20.1%) 등을 꼽았다(복수응답).
시간의 양보다 질을 높여 업무에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8시간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3번째로 많이 일하는 나라다. OECD 38개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은 1687시간이다. 이와 달리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1.7달러로 27위다.
해외에선 주4일제 실시로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영국 레딩대학의 2019년 연구를 보면, 주4일제를 도입한 영국 기업의 64%가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지사는 주4일제 실시 후 생산성이 40%가량 향상됐다고 발표했다.
“생산성 향상, 일자리 창출 어렵다”
그러나, 찬성만큼 반대 논리도 선명하다. 기업 비용·부담 증가, 노동생산성 하락 등을 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사람인의 같은 설문조사에서 주4일제에 부정적 답변을 한 이들은 임금삭감 가능성(60.4%), 업무강도 상승(45.3%), 생산성 하락(19.6%), 상대적 박탈감(15.4%), 기업 경쟁력 약화(15.1%)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복수응답).
근로시간 축소를 두고 업종 간, 정규·비정규직 간 격차가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는 “IT, 금융 업종이나 공공기관, 전문직 등 근로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업무나 직종에서는 자연스럽게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질 수 있지만, 양극화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4일제가 일자리 창출이나 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장정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최근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실근로시간이 많이 줄고 있는데 동시에 고용률도 감소하는 추세”라면서 “주4일제 도입 시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고 하지만, 최근 추세를 보면 근로시간을 줄였을 때 실제로 일자리가 늘어날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 지속가능한 형태를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의 세계적 트렌드에 걸맞게 기업 주도로 주4일제 확산이 빠르게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기업 주도로 주4일제를 정착시키되,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양극화나 불평등 등의 문제를 정부가 차분하게 분석하고 정책 우선순위를 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본부장은 “유연근무제 확대, 전문직 근로시간 면제제도 등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인 뒤에야 근로시간 축소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