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 승인… 10년간 슬롯·운수권 반납 조건

입력 2022-02-23 04:03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 이날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 양사 항공기가 주기돼있다.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승인했다. 일부 노선에 신규 항공사가 들어오거나 기존 항공사가 증편하면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과 운수권(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을 반납해야 하는 조건이다. 다만 공정위가 정한 10년의 기간 동안 슬롯이나 운수권을 요구하는 경쟁 사업자가 없으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그대로 노선을 운항할 수 있다. 시장 논리에 맡기는 공정위 결론이 사실상 조건 없는 승인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는 국내외 여객 노선 87개 중 40개 노선(국제선 26개, 국내선 14개)에서 독과점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서울에서 미국 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을 운항하는 노선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산 점유율이 높기 때문에, 시정조치를 하지 않으면 가격 인상이나 서비스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10년 안에 해당 노선의 운수권과 공항 슬롯을 원하는 다른 항공사가 나오면 해당 권한을 넘기도록 했다.

다만 코로나19로 항공 여객 수요가 20% 수준으로 급감한 상황에서 새로 시장에 뛰어들 사업자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 노선은 완전 독점화될 수 있는 셈이다. 또 장거리 노선의 경우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보다는 외항사가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사업자보다 해외 사업자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고병희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현실적으로 국내 LCC가 장거리 노선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슬롯이나 운수권을 배분할 때 국내 LCC와 외항사를 차별적으로 조치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공정위가 2020년 말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한 것과도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자회사 지분을 100% 매각하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번 항공 결합에서는 자회사 매각이 독과점 해소에 큰 실익이 없을뿐더러 해외 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해외 경쟁 당국의 결정도 고려해야 한다.

공정위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은 미국, 영국, 호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6개국 경쟁 당국의 결론이 모두 나오면 이를 반영해 시정조치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를 두고 경쟁법 집행 주권을 외국 경쟁당국에 넘긴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공정위는 이밖에도 양사 결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는 별도의 조치를 마련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했고, 공급 좌석 수도 일정 비율 미만으로 축소하지 못하게 했다. 좌석 간격이나 무료 기내식, 무료 수하물, 라운지 이용, 마일리지 등 서비스도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다. 공정위는 양사에 기업결합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마일리지 통합 방안을 제출하고, 공정위 승인을 얻어 시행토록 했다.

이번 조치에서 국내외 화물 노선과 항공정비시장 등은 대상에서 빠졌다. 경쟁 제한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제주~울산·여수·진주 등 수요가 부족한 국내선 6개 벽지 노선은 소비자 피해 방지 조치만 부과했다. 공정위는 슬롯·운수권 조정 등 구조적 조치는 경쟁 항공사가 신규로 진입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만큼, 양사가 소비자 보호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