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유령회사 세워 회삿돈 자식에게 양도… 식품 재벌 2세 ‘덜미’

입력 2022-02-23 04:05

국내 유명 식품기업 대표인 A씨는 창업주인 부친에게서 기업을 물려받은 소위 ‘재벌 2세’다. A씨는 부친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부의 대물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세금만 낸다면야 전혀 문제없는 행위다. 하지만 A씨는 증여하면서 발생하는 세금을 아끼기 위해 ‘탈세’를 계획했다.

서민들은 불가능한 방식을 선택했다. A씨는 대표이사 자격으로 해외에 아무런 업무 기능이 없는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사실상 ‘유령회사’인 이 법인으로 회사 자금이 흘러들었다. 현지법인은 이 자금으로 해외 고가 부동산을 매매하며 큰 수익을 남겼다. 종자돈이 회사 자금인만큼 법인 실적이어야 마땅하지만 수익금은 전액 해외 거주 중인 A씨 자녀 계좌로 입금됐다. 현지법인 자금 역시 A씨 자녀의 쌈짓돈처럼 쓰였다. 거주 중인 고가아파트 구매 대금이나 생활비 모두 현지법인이 부담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부동산 양도나 부동산 양도 대금에 대한 증여 신고는 없었다. 회사 자금을 빼돌려 입금한 A씨 자녀의 해외금융계좌 역시 신고한 적이 없다. 세정 당국은 일련의 자금 흐름에 역외탈세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이 현지법인을 활용한 44건의 역외탈세 혐의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22일 밝혔다. 조사 대상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A씨 사례처럼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자신의 비밀 지갑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21건으로 가장 많다. 전형적인 부자 탈세 유형이기도 하다. 대상자 모두 최소 수십억원을 보유한 자산가다. 특히 이 중 6명은 100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본사와 현지법인 간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탈세한 기업 유형도 10곳이나 된다.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헐값 매각이 꼽힌다. 해외에 있는 지배주주에게 이익을 나누기 위해 우량 현지법인 주식을 헐값에 넘기는 식이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최소화하겠다는 일종의 ‘꼼수’다.

한국에서 영업 중인 다국적 기업 13곳 역시 조사 대상에 올랐다. 이들은 국내에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연락사무소만 있다거나 고정 업무가 없는 것처럼 꾸며가며 조세를 회피했다. 고정수익 사업장이 있거나 수익 사업을 하는 경우에만 법인세를 부과한다는 점에 착안해 우회로를 뚫은 것이다. 국세청은 이 역시 역외탈세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동일 국세청 조사국장은 “역외탈세가 새로운 탈세 통로나 부의 대물림 창구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