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도처에 ‘파리떼’

입력 2022-02-23 04:20

20대 대통령선거 다가오면서 각계각층 후보 지지선언 이어져
연예인 등 유명인의 정치참여 관심 높이는 긍정적 측면 있으나
선거 후 자리 거래로 이어지는 부정적 사례도 비일비재
선거는 폴리페서들의 대목… 입신 위해 곡학 서슴지 않아

서울대생 박종철은 대학 선배 P를 지키려다 청춘을 마감했다. 지하서클 활동을 함께하며 연을 맺은 선배였다. P는 경찰 수배 중이었다. 박종철은 지갑에 마지막 한 장 남은 1만원짜리를 쥐어 주며 P의 도피를 도왔다. 경찰은 그런 박종철을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고갔다. 경찰은 물고문까지 자행하며 P의 소재를 추궁했으나 박종철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P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86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박종철 사후 P의 진로는 당시 운동권 주류와 달랐다. 대부분이 재야에 남거나 김대중 주도 제도권 야당에 편입한 반면 P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금의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 몸담았다. 이후 16·17·18대 총선에 내리 출마했으나 줄줄이 낙선했다.

정당 선택은 자유다. 신념에 따른 정당 선택이 문제될 리 없고,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P는 내내 ‘변절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해자 편에 섰다는 일부의 비판적 시각보다 박종철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원죄가 커서다. P는 총선에 출마하면서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현재의 민주화투쟁이다. 종철이가 살아 있었다면 나와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썼다. 이런 이유로 박종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들은 P를 투명인간 취급한다고 한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각계각층의 후보 지지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구 정치인, 교수, 연예인은 물론 최근엔 스포츠인들도 이 시류에 합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폴리페서, 폴리테이너에 이어 정치 참여 스포츠인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것도 시간문제인 듯하다. 유명인의 정치 참여는 정치 무관심층의 관심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 참여가 ‘선거 후 한자리’ 조건으로 거래되는 순수하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 구 민주당 계열 출신 구 정치인 20여명이 국민의힘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자신이 몸담았던 진영의 논리를 부정하며 정권교체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를 하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선언은 여당 입당이 거절되자 발 빠르게 야당으로 말을 갈아탄 국회의원 주선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이들의 말은 기존 야당인사보다 거칠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살아남으려면 박힌 돌처럼 행동해선 가망이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후보 명의 임명장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다. 신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마구 뿌려진다. 정치활동이 엄격히 금지된 공무원에게 임명장을 준 것도 모자라 초등학생 특보도 생겨났다. 바야흐로 특보 전성시대다.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임명장이 뿌려졌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한낱 종이쪼각에 불과한 것을 두고 마치 엄청난 감투라도 쓴 양 ‘나 이런 사람이야’ 으스대는 이들이 흔하다. 캠프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제 돈 들여 활동하는 이도 수두룩하다. 이들이 바라는 바 역시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구 정치인의 그것과 매한가지다.

선거는 폴리페서들에게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하는 ‘업적’에 따라 하루아침에 고위공직자로 신분이 바뀔 수도 있다. 이 길을 간 수많은 선배 폴리페서들이 귀감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곡학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 대학이 특정인의 논문 검증을 뚜렷한 이유 없이 연기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게 지난해 7월인데 8개월이 다 되도록 결론을 못내렸다. 학교는 애초 검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 내부 반발이 거세자 2월 중순까지 절차를 마치겠다고 했으나 그 시한을 또다시 대선 후인 3월 말로 미뤘다. 아무래도 학술지에 게재됐다는 이른바 ‘member Yuji’ 논문이 일반 교수들의 학문 수준을 뛰어넘은 대단한 수작인 모양이다. 학문을 모독하는 부류들이 걸핏하면 부르짖는 테제가 학문의 자유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짧은 재임 기간 가장 우려했던 게 ‘파리떼’다. 비단 야당에 국한된 진단이 아니다. 선거캠프가 사익을 추구하는 카르텔화 한 지 이미 오래다. 저마다 인생역전을 꿈꾸며 몰려든 예비 낙하산들의 서식처다. 문제는 낙하산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다. 결과는 진흙 밭 개싸움이다. 영영지극(營營之極), 도처에서 파리떼가 창궐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