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가 아냐.”
야수 같은 모습으로 철창에 갇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기인(奇人)이 공포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혼잣말을 한다. 무일푼으로 떠돌아다니다 서커스에 오게 된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은 홀린 듯 기인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서커스단 주인 클렘(윌렘 데포)에게서 일자리를 제안받는다.
스탠턴은 서커스단에서 만난 독심술사 지나(토니 콜렛)와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 부부에게 타로와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기술을 배운다.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스탠턴은 서커스단에서 전기쇼를 하던 몰리(루니 마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몰리를 설득해 함께 뉴욕으로 떠난다.
수려한 외모와 현란한 화술로 독심술을 선보이며 스탠턴은 뉴욕 상류층의 유명 인사가 된다. 공연장에서 자신의 욕망을 꿰뚫어 본 심리학자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를 만난 뒤 그로 인해 더 큰 열망에 사로잡힌다. 릴리스가 어두운 과거를 가진 뉴욕 법조계 거물 에즈라(리차드 젠킨스)를 소개해주면서 스탠턴의 운명은 위험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촬영상, 의상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등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윌리엄 린지 그레셤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촬영감독 단 라우스트센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춰 화려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알록달록 동화 같은 색감, 환상적인 배경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광기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1930년대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초반은 다양한 소품을 통해 시대상을 재현한다. 대공황 이후 돈과 성공에 집착했던 미국 사회의 단면을 스탠턴이라는 인물을 통해 조명한다.
모든 대사가 복선이 되는 치밀하게 짜인 스토리는 관객들이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한다. 교훈이 담긴 잔혹동화지만 반전이 있다. 첫 장면부터 차곡차곡 쌓아가는 서사와 암시는 결말을 궁금하게 한다. 거짓이라도 화려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스탠턴과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몰리, 오랜만에 찾아와 타로로 스탠턴의 운명을 이야기하는 지나, 속을 알 수 없는 릴리스….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완성도를 더한다. ‘스타 이즈 본’ ‘조커’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으로 주연과 감독, 제작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 중인 브래들리 쿠퍼와 아카데미상 2관왕에 빛나는 케이트 블란쳇이 숨 막히는 연기 대결을 펼친다. 순수와 허영, 광기, 절망을 오가는 쿠퍼의 눈빛 연기가 여운을 남긴다. ‘캐롤’에서 호흡을 맞춘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도 재회했다.
미국 포브스는 ‘나이트메어 앨리’에 대해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 최고의 영화”라고 평했다. 주인공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23일 개봉.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