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분쟁지역 휴전 감시단 ‘친러 요원’만 남았다

입력 2022-02-22 04:07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역 돈바스의 도네츠크주에 사는 한 남성이 19일(현지시간) 러시아로 대피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 딸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딸이 차창에 사랑한다는 의미로 하트를 그려 놓은 게 인상적이다. 친러시아 반군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전쟁 가능성이 커졌다며 관내 주민들에게 군 총동원령을 내렸다. 여성과 아이 등에겐 대피령을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화약고’ 돈바스 지역의 휴전 상황을 감시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특별감시단에서 서방 국가 출신 요원들이 대거 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이 지역에서 일어난 포격을 두고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각각 서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친러 국가 출신만 남은 감시단이 중립적 감시를 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20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커지면서 감시단 요원 중 미국 등 서방 국가 출신 요원들이 대부분 철수했다.

지난 1월 OSCE 보고서에 따르면 감시단은 40개 국가에서 온 680명의 요원으로 구성됐다. 서방 출신은 국적별로 미국 57명, 영국 40명, 캐나다 28명, 네덜란드 7명이었다. 이들은 2015년 체결된 민스크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대치 중인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 간 휴전 합의를 감독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가디언은 “당장이라도 양측 간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감시단의 객관적인 모니터링 임무는 더욱 중요하다”며 “그러나 감시단의 구성을 보면 중립적인 감시 업무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 정부군과 반군은 돈바스 지역의 포격이 각각 서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군은 정부군이 집중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하고, 정부군은 반군이 퍼트린 가짜 뉴스라며 러시아 지원을 받는 반군에 의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말이 판이하게 달라 감시단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이를 우려한 듯 OSCE에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리나 베레시추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최근 포격 피해를 본 돈바스 루간스크의 한 마을을 찾아 “OSCE 감시 임무가 이번 상황에 완전히 객관적이지는 못하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가 임명한 세르히 하이다이 루간스크 주지사도 “남아있는 감시단 요원들은 러시아와 구소련 국가들의 대표들”이라며 “그들은 민간 건물 포격 증거를 찾기보단 우리 군사 시설물만 보려고 해 큰 의문을 품게 한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OSCE 일일 보고서를 인용해 실제로도 감시단이 포격 피해를 받은 건물에서 50m 이내로 접근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때문에 사용된 무기나 포격 방향을 판단할 수 없다고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OSCE는 “감시 요원들의 변화가 보고서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은 이곳 작동 방식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