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생각이 특히 궁금합니다. 교육 담당 기자 입장에서 ‘정치 신인’ 윤 후보는 미지의 인물입니다. 토론회나 인터뷰에서도 교육 분야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으며 나오는 정보들도 단편적인 조각뿐이었습니다. 이는 여야 유력 대선 캠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고교학점제를 추진 중인 여당 후보에다 오랜 시간 정치를 해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윤 후보가 ‘공부왕찐천재 홍진경’라는 채널에서 꽤나 묵직한 말을 했습니다. “교육은 가르친다기보다 스스로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제일 중요한’ 게 다양성, 똑같은 커리큘럼으로 똑같이 가르치면 사회는 발전이 없어요. 각자 원하는, 수학을 대학 수준으로 배우고 싶으면 그렇게 특화시켜주고….”
계속 열변을 토합니다. “그림 좋아하면 그림, 게임이 좋으면 게임을 특화해 공부할 기회를 줘야 해요. 우리 교육이 자꾸 그런 방향으로 가야만 다양한 인재가 나와 나라가 발전을 할 거예요.” ‘제일 중요한’이라고 전제했으니까 교육 정책의 대원칙을 밝힌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죠.
다음 발언들과 비교해보시죠. ①“국가교육과정으로 결정되는 천편일률적 수업시간표 대신 학생이 주체가 돼 수업시간표를 만든다.” ②“국가와 학교가 정한 획일적 수업시간표대로 교육이 이뤄지는 게 아닌 학생이 자신만의 수업시간표,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교육 패러다임 변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문재인정부 핵심 교육공약인 고교학점제를 설명한 말입니다. ①은 지난해 8월 23일 고교교육 혁신 추진단 회의 ②는 같은 해 2월 17일 고교학점제 종합추진계획 발표에서의 발언입니다. 학생이 주도권을 갖고 학업 계획을 짜는 자기주도성, 공교육이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이란 대목 모두 윤 후보의 대원칙과 다르지 않습니다.
방법론에선 차이가 있습니다. 윤 후보는 “중학교까지는 정규 교육과정으로 똑같이 배우는 시간을 줄여 좀 다양한 걸 배우게 해주고, 고교부터 나눠야 할 것 같아요. 기술고 예술고 과학고…, 그런(비슷한 진로·적성을 가진) 친구들이 (함께) 학교생활을 하면 서로 인격을 키우고 안목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당은 “이미 과학고, 예술고 등이 존재한다”며 윤 후보의 준비 부족을 부각시키는 소재로 활용했는데,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이고 단순 공격 소재로 넘길 사안도 아닙니다. 윤 후보 발언의 맥락을 짚었으면 어땠을까요.
‘중학교 정규교육과정에서 똑같이 배우는 시간 줄이자’는 대목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박근혜정부가 만든 현행 국가교육과정과 문재인정부의 2022년판 교육과정에선 고1까지를 공통교육과정으로, 이후를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박근혜정부에서 시작해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고교학점제도 고2부터(혹은 고1 2학기) 선택형으로 설계했습니다.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꼭 배울 공통의 내용’에 대한 기준을 고1까지로 설정한 거죠. 이를 중학교로 낮추자는 건데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됩니다.
교육계에선 해묵은 ‘분리교육’과 ‘통합교육’ 논쟁도 예상됩니다.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가진 학생들을 학교 단위로 분리해 가르치느냐 한 학교에서 통합해 가르치느냐는 차이입니다. 전자의 이상을 반영한 곳이 과학 인재를 위한 과학고, 예술 인재를 모은 예술고, 외국어 인재를 키우는 외국어고 등입니다. 특화 인재를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고, 윤 후보 말처럼 비슷한 학생끼리 모아놓으니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고교학점제는 통합교육입니다. 그래서 운영하는 국가들에서 ‘카페테리아형 커리큘럼’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카페에서 주문하듯 학교 내에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합니다.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을 위해 과학고 수업을 들여오고 부족하면 대학과 연계해 심화 과정도 지원하는 방식이죠. 다양한 부류의 학생이 섞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과학 인재들만 모으면 예체능 인재와 학창시절을 공유할 수 없죠. 다양성 존중이란 민주시민의 핵심 덕목을 배양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학생 맞춤형 교육이란 흐름에는 고교학점제를 추진 중인 여권이나 윤 후보 생각이 일치하는 모습입니다. 다만 윤 후보 말처럼 학교 유형 다양화를 통해 이를 도모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학교가 필요할지 의문입니다. 예컨대 미술 교육을 원하는 학생 10명이 있는데 인근에 예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없으면 이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 학교를 만들어줘야 하는지, 그 학생들이 졸업하고 그 지역에 미술을 배우려는 학생이 없으면 학교와 교직원은 어찌 해야 하는지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고교학점제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현재 우리 고교들이 다양한 교육 과정을 소화하고 학생의 수업 선택권을 온전히 보장해줄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지역과 학교 규모에 따라 수업 선택권의 격차는 또 어떻게 보정할까요. 대입에 직결되는 사안으로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중등교육의 근간을 바꾸는 고교학점제가 차기 정부 중반인 2025년 3월 시행 예정입니다. 올해 중1이 첫 적용 대상입니다. 윤 후보님, 만약 당선되시면 고교학점제는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요. 대선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1 이하 학부모들을 위해 남은 토론회나 인터뷰에선 입장을 밝혀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