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중에서 유통되는 마약은 대부분 해외에서 밀반입되고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모두 공항·항만의 세관을 통과한 것인 셈이다. 이렇게 밀반입되는 마약류는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365일 관세 국경 최일선에서 벌어지는 ‘마약과의 전쟁’도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16일 찾은 인천국제공항 내 인천본부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는 불법 밀반입되는 마약류·총기 등을 적발하기 위한 세관 공무원들의 업무가 한창이었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세관에서 적발된 마약은 1054건, 총량은 1272㎏에 달했다. 적발건수는 전년 대비 51%, 적발량은 757% 각각 증가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출입국이 어려워지면서 여행자를 통한 밀수는 많이 줄었지만 ‘풍선효과’로 특송화물이나 국제우편을 통한 마약 반입 시도가 급증하는 실정이다.
지난해부터 마약 사건에 대한 세관의 수사 범위가 확대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500만원 미만 마약 밀수’ 사건은 세관 특별사법경찰관의 수사 대상이 됐다.
“세관과 마약사범은 ‘톰과 제리’”
특송물류센터에서 하루 평균 처리하는 물류량은 약 17만건에 달한다. 블랙프라이데이 등 해외직구 성수기 때는 20만~25만건으로 급증한다.
세관에서 마약류 등 반입금지 물품을 적발하는 과정은 ‘선별→검색→검사’ 등 3단계다. 선별 및 검색은 마약탐지견, 우범화물선별시스템(C/S·Cargo selectivity), 엑스레이 판독기 등 과학검색장비, 프로파일링 기법,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다. 선별·검색 과정을 통해 걸러진 화물은 직접 세관 직원들이 정밀 개장 검사를 진행한다. 전체 물량 중 약 5%가 이에 해당한다.
365일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인천세관 특송통관과 공무원들은 혹시라도 마약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까 검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꽁꽁 테이프로 싸매져 있는 택배상자를 뜯으니 20여개의 비타민 약통과 과자가 들어 있었다. 이들은 약통을 흔들어서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고 내용물 냄새를 조심스레 맡아보기도 했다. 최근에는 물동량이 적을 때여서 하루 한 직원이 10~20건 검사를 진행하지만 물동량이 몰리는 시기에는 최대 200건까지 검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특송통관과 관계자는 “마약을 은닉해서 들여오는 수법은 정말 상상초월”이라며 “새로운 수법이 들통나면 또 다른 수법을 또 개발한다. 오랜 시간 마약 적발 노하우를 익힌 세관 직원들과 이를 피하려는 마약사범 간 영원한 ‘쫓고 쫓기는’ 전쟁”이라고 말했다.
필로폰을 초콜릿바처럼 위장해서 포장한다든지, 대마초를 동그랗게 뭉쳐 테니스공 안에 넣은 뒤 박음질하는 것은 예사다. 마약 일종인 MDMA를 시리얼 속과 비타민통 등에 담는 것도 흔한 사례다. 최근에는 유아전동차 바퀴 안 완충 공간에 마약을 은닉한 사례나 백팩 스펀지 쿠션 안에 마약을 숨긴 다음 박음질한 사례도 발견됐다. 지난해 여름까지는 택배상자 벽에 골판지로 공간을 만든 뒤 필로폰을 얇게 펴서 은닉하는 수법이 유행했다.
물품 하나를 검사할 때 짧게는 2~3분이 소요되지만 길게는 수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송통관과 관계자는 “지난해 오토바이 쇼바 안쪽 부품을 제거한 뒤 액체 마약을 넣은 경우가 적발됐는데, 이때 부품을 다 분해해야 해서 몇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인력 증원은 풀어야 할 숙제
통관에서 적발된 마약류는 인천세관 마약조사과로 넘어가 마약사범을 실제 검거하는 데 활용된다. 인천세관 마약조사과에는 총 8개의 수사팀이 있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일반 경찰과 다를 바 없다. 수사팀은 주로 ‘통제배달’ 방식으로 ‘진범’을 잡아낸다. 택배 배달원으로 위장해 마약이 들어 있는 택배를 주소지에 배달하고, 수취인이 나타나면 직접 현장에서 잡아내는 식이다. 택배를 배달해도 수취인이 바로 나타나서 택배를 수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4~5일까지 현장에서 잠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장에 수취인이 나타나 덜미를 잡는다고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마약 사건의 핵심은 피의자 특정이다. 어떤 사람이 마약을 주문했는지,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대부분 본인이 받는 택배에 마약이 들어 있다는 사실부터 적극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에 이를 특정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특히 차명·대포폰을 이용한 명의도용 문제가 심각하다. 막상 택배를 주소지로 배달해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일반 아파트라고 해도 실명을 적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부터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일환으로 500만원 미만 마약 밀수사건의 직접 수사권이 관세청으로 넘어왔다. 다크웹·텔레그램 등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소량의 마약류를 해외직구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면서 관세청의 직접 수사 역할은 점점 더 확대되는 추세다.
하지만 단속 현장의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다. 지난해 관세청은 다른 마약수사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60여명의 인원으로 전담팀을 운영했다. 올해 2월 인천본부세관에 마약조사2과가 신설돼 5급 1명 등 12명이 증원되긴 했지만 경찰과 검찰이 마약 수사에 각각 1100여명, 280여명을 투입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참 미치지 못한다. 마약조사과 관계자는 “인원 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천=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