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같은 해 8월 우리 정부를 도왔던 아프간 사람들이 특별기여자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충북 진천과 전남 여수의 임시 생활시설에서 한국 문화를 배운 78가구 총 389명은 지난 10일 일자리가 있는 울산, 인천, 경기 남양주 등으로 흩어졌다.
S씨(42) 가족은 최근 15가정과 함께 인천에 정착했다. 아내, 자녀 셋과 함께 한국에 온 그는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18년간 일했다. 인천에 정착한 이들 가족들이 지난 18일 첫 나들이에 나섰다. 남성들은 직장에 간 탓에 여성과 아이들만 참여했다. S씨는 무릎에 문제가 생겨 직장에 나가지 못해 외출에 동행했다.
이날 나들이를 주선한 건 과거 아프간 청소년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이성제(54) 감독이다. 이 감독은 진천에서부터 합숙하며 아프간 사람들의 정착을 도왔다. 그는 외교부에 이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통역자로 활동했고, 법무부가 마련한 아프간 자녀 대상 축구 교육도 담당했다. 매일 오후 2시간씩 축구를 가르치고 밤이면 아프간 가족들의 고민도 상담했다. 아프간 사람들은 그를 ‘코치 리’라 불렀다. 이 감독은 “한국교회가 보이지 않게 많은 도움을 줬다”며 지난 5개월의 임시 생활시설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외출을 도운 건 부천의 A선교단체다. 이 지역에 아프간 특별기여자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A단체는 이 감독에게 도울 방법을 묻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일단 무슬림의 특성을 감안해 일정은 남녀를 구분했다. 남자아이들은 A단체 근처 풋살장에서 축구를 했다. 여성과 여자아이들은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쇼핑에 나서기로 했다. 새로운 일정도 추가됐다. 네일케어다.
이 감독의 아내 N씨는 “이슬람 여성은 복식 제한이 많다 보니 메이크업과 네일케어, 장신구에 신경을 쓴다”면서 “간사 중 한 명이 네일케어를 할 줄 아는데 그 용품을 보여줬더니 쇼핑을 포기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A단체는 해외 사역의 노하우를 앞세워 이들의 정착을 꾸준히 도울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이 여수에 머무를 때도 지역교회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여수 지역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4개 교회는 성탄 선물을 보냈다. 딸기나 견과류, 생필품 등을 박스에 담아 전달했다. 여수 B교회 목사는 “아프간 특별기여자가 여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목회자들과 이들을 돕기 위한 의견을 공유하고 이 감독에게 연락했다”면서 “각 교회가 필요한 걸 보냈는데 우린 딸기 등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박스엔 ‘예수 성탄의 기쁨을 나눈다’는 스티커를 붙였다”고 전했다.
지난 9월엔 축구교육 소식을 들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이 감독을 통해 축구공과 신발 유니폼도 지원했다. 이 감독은 한국교회를 향한 바람을 전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나이대인 6명 정도가 축구에 재능이 있는데 그들의 경제 상황으로는 축구 선수로 키울 여력이 없습니다. 정부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한국교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천=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