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신학문 교육은 국가가 아니라 사학이 주도했다. 조선말에는 선교사와 선각자들에 의해 설립된 사립학교가 민족 개화운동을 주도했고, 일제 침략기에는 항일운동의 산실로서 민족 정체성을 지켜냈으며, 해방 후에는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사학은 다양하고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헌법적 의미가 크다. 사학은 자주성이 확보된 가운데 설립자의 특별한 설립 이념을 구현하거나 독자적인 교육 방침에 따라 개성 있는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헌법적 기능을 다할 수 있다(헌재 1991. 7. 22. 89헌가106). 사학 자주성과 독자성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8월 31일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공공성을 제고한다는 명목으로 사학의 자주성과 그 존립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개정법은 교원자격증을 소지한 사립학교 교원지원자로 하여금 교육당국이 주관하는 필기시험에 응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는 운용방법에 따라서는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에 충실한 사람’이 아닌 ‘교육당국의 특정이념에 충실한 사람’을 사립학교의 교원으로 채용토록 함으로써 사학의 교원 임용권을 박탈한다.
또한 개정법은 교육감이 사립학교 교직원에 대해 징계를 요구한 다음, 사학의 징계의결에 불만이 있는 경우에는 재심의를 요구하여 교육청에 설치된 징계심의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징계되도록 했다. 사학이 교육감의 징계요구를 거절하면 과태료가 부과되는 규정과 보조금 지급이 거절되는 현실과 결합하여 개정법은 사실상 사학의 교직원 징계권을 박탈하고 있다.
한편 개정법에 의하면 학교법인의 임원이 관할청의 교직원에 대한 징계요구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관할청은 그 임원의 취임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이사인 임원은 사립학교의 설립 목적이나 이념을 유지·계승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므로 관할청이 임원 취임승인 취소로 사학의 건학이념과 그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개정법은 교육당국이 사학의 인적구성을 통제·장악할 수 있도록 하여 ‘교육당국의 제왕적 독재’를 가능하게 하고, 다양한 인재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사학의 헌법적 의미를 훼손하며, 사학의 자주성과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다. 특히 교육당국이 특정이념에 편향된 경우 학생들로 하여금 특정이념에 편향된 교육, 왜곡된 역사교육, 일방적 성가치관을 강요하는 성교육 등을 받게 함으로써 학부모의 자녀교육권과 학생의 인격 발현권을 침해하고 종교의 자유 등을 침해할 뿐 아니라 헌법 제31조에 규정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헌법의 핵심질서인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나아가 기존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학교법인은 학교의 교지, 교사(校舍) 등을 매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물적 통제를 받는 학교법인이 개정법에 의해 인적 구성마저 교육당국으로부터 관리·통제·장악된다는 것은 사학의 존립기반을 붕괴시켜 사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사학의 비리는 척결돼야 하고 그 공공성은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개정법과 같이 위헌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학의 자주성과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되는 방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