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인격적인 나이듦을 준비하자

입력 2022-02-22 04:02

본인 나이에 0.8을 곱하면 현대 나이가 되는 계산법이 회자된다. 75세의 경우 현대 나이는 60세다. 숫자 나이를 명목 나이, 신체 건강 조건 등을 고려한 생물학적 나이를 실질 나이라고 했을 때 둘 사이의 간극을 연령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정년, 사회보장제도, 경로우대, 고령자 비중 등 많은 제도와 규범이 명목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개인의 삶과 정책에 연령 인플레이션을 적극 고려하지 않으면 건강한 100세 시대를 준비하기 어렵게 된다.

통계청 데이터를 보면 1970년 60세 사망률 2.5%는 2020년 75세 사망률 1.9%보다 높았다. 우리나라 60세의 기대여명은 지난 50년간(1970~2020년) 15.9년에서 25.9년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공중보건 개선, 의료 발전, 경제 성장 등의 성취로 인간의 수명이 크게 연장된 것이다. 이런 대단한 성과는 곧바로 사회의 고령화로 인한 연금 고갈, 건강보험 적자, 경제 저성장 문제로 치환돼 우려의 목소리들이 요란하다.

장수 시대에 자동화, 인공지능, 디지털 기술까지 결합돼 우리의 직업, 교육, 인간관계, 노후생활 등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변화에 따른 리스크에 대한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돼 왔다. 현재를 예상보다 오래 살게 돼 개인과 정부 모두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볼 수 있다.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은 ‘뉴 롱 라이프’에서 장수와 기술 발전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사회적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연금·건보 등 사회보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보다 인격적인 나이듦을 준비하기 위해 개인과 정부가 참고할 수 있는 몇 가지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개인은 장수 시대에 미래의 자신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좋다. 젊을 때 학업 혹은 일에만 몰두하기보다 시간을 분산시켜 현재 더 운동하고, 가족 및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고, 새로운 직능을 익히는 등 미래의 나(건강, 인간관계, 직능)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보다 오래 사는 자신을 예상하고 나서 현재 자신이 시간과 돈을 어떻게 분배해 쓰는지를 다시 돌아볼 시점이다. 교육-일-퇴직의 3단계 삶의 도식에서 벗어나 기술 발전에 따라 자발적·비자발적 다양한 진로 전환이 일어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의 나를 탐색하고 준비하는 성년기 학습에도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장수, 기술 변화와 관련한 리스크를 비인격적인 숫자 계산으로만 접근해 연금 지급액을 줄이고 건강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대책만 내놓을 게 아니라 보다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정책은 국민이 100세 시대에 인격적으로 살 수 있도록 꼬리 위험(삶에서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발생하면 큰 피해를 주는 위험)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하고 노후를 스스로 대비할 수 있게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정돼야 한다. ‘긱 이코노미’ 근로자 등 소득과 고용의 불안정이 높은 상황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미래에 더욱 대비할 수 있도록 근로 기본조건 보장, 4대 사회보험 적용 확대 등 사회적 보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실직자를 포함해 직업 전환을 준비하는 성인에게 미래에 유용한 직업 및 직능에 필요한 교육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맞는 우리나라 평생교육 관련 기관 및 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 수료생의 신뢰가능한 취업 데이터, 미래에 유용한 직능·교육기관 데이터를 수요자 입장에서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와 직업훈련을 담당하는 고용노동부로 이원화된 구조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성도 해결해야 한다.

김민호 한국개발연구원 재정투자평가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