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오전 9시20분. “두 줄입니다. PCR로 가세요.” 감기몸살이라기엔 수상쩍었다. 전날 저녁부터 두 아이와 아내도 증상을 보이면서 밀려온 불안은 현실로 돌변했다.
2월 15일 오전 11시. 두 아이는 일찌감치 ‘양성’ 문자를 받았는데 나에겐 오지 않았다. 정오 가까워서야 ‘확진’ 문자가 왔다. 보건소에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테니 자택 대기하라고 한다. 각자 알아서 증상 발현일 전후로 만난 사람, 방문 장소에 연락을 취해 달라는 당부를 붙였다. 그 뒤로 아무 연락도, 정보 제공도 없다. 큰아들의 친구는 증상 발현 한참 전에 만났지만 밀접 접촉이라면서 스스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이웃들은 뭐라도 도울 게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한다.
2월 15일 오전 11시30분. 제각각 두통, 어지럼증, 발열, 인후통, 기침, 가슴 통증 등을 호소하는 데 딱히 할 게 없어 막막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 동네 약국에서 약을 배달해준다 같은 정보들이 보였다. 동네 의원에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처방전을 확진자 아닌 사람이 와서 받아가야 한다. 이웃 도움을 받아 3명의 5일치 ‘감기약’을 타왔다. 문제는 증상 발현이 늦어 PCR 검사를 한 번 더 받은 아내였다. 확진자가 아니라서 진료나 처방이 안 된다고 했다. 약봉지에 적힌 각 약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고 가족끼리 약을 나눠 먹었다.
2월 16일 오후 3시. ‘진짜, 각자도생이구나.’ 보건소 대표전화는 늘 통화 중이다.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 재택치료 업무를 담당하는 이웃이 전화를 걸어왔다. 재택치료 의료상담센터에 전화해도 되는데 연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아프거나, 열이 이틀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119를 부르세요.” 신문과 방송, 정부 발표로 접하던 수많은 정보는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웃의 전화 한 통은 토씨 하나까지 각인됐다. 두 아이는 보건소 문자를 받았다. 기초역학조사서를 작성해 달라는 게 전부였다. 재택치료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위급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격리 기간과 해제 결정은 어떻게 하는지 같은 정보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2월 17일 낮 12시, 재택치료 나흘째. 백신 접종을 충실하게 한 덕분인지 큰 탈이 없다. 기저질환이 있는 아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의사와 비대면 진료를 했다. 처방전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약국으로 보내졌고, 퀵 서비스로 처방 약이 집까지 배달됐다. 이게 모두 공짜다. 두 아들에겐 보건소에서 격리 기간 등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2월 20일 오후 3시. 격리해제를 코앞에 두고 아내에게 ‘기저질환자를 위한 건강관리세트’가 배달됐다. 이제야 각자도생이라는 푸념이 사라질까 싶다.
지금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국가가 검사·방역부터 확진자 관리·치료까지 모두 관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픈 사람 모두가 병의원을 찾는다고 했을 때 이걸 감당할 의료체계를 갖춘 나라는 없다. 가벼운 증상의 환자가 병상을 차지하면 위급한 환자는 거리를 떠돌아야 한다. 재택치료, 셀프케어는 나보다 의료진 도움을 더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한 배려다.
하지만 재택치료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은 여러모로 분노와 탄식을 유발한다. 촘촘하게 ‘그물’을 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다만 재택치료를 하는 이들이 쉽게 정보를 얻고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하지 않겠나. 재택치료는 온전히 스스로 하는 치료가 아니라 자율적 통제 아래 이뤄지는 치료다. 그래야 더 큰 파도를 막을 수 있다. 아파보니 알겠다.
김찬희 산업부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