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국내 발병 이후 적극적으로 정책 자문에 나섰던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16일 일상회복지원위원회 위원직을 사임했다. 정점이 보이지 않는 오미크론 유행에 “한동안 현장에 집중해야 할 때”라던 이 교수와 20일 오전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돌연 사임한 이유는.
“가장 힘든 위기를 앞두고 정부가 제대로 판단을 못 한다고 느꼈다. 지금껏 정부가 결단을 미적거린 적은 있었지만 상황이 악화되는데 거리두기를 완화하잔 얘길 꺼낸 적은 없었다. 기조 자체가 바뀌었단 의미다. 이번엔 아예 방역의료분과 회의 전날에 사적모임·영업시간 제한을 각각 8인과 오후 10시로 완화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사실상 선을 그은 거다. 여기에 대선 후보들까지 방역 당국을 계속 압박했다. ‘방역 레임덕’이 왔다고 느꼈다.”
-지난 18일 발표된 새 거리두기는 ‘6인·10시’였는데.
“사실 이번 발표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에게 오미크론이 별거 아니란 생각을 심어줬다는 데 있다. 확 풀지도 못했으면서, 오미크론이 별거 아니란 인식을 강화했다. 델타 유행 때 거리두기를 강화해 떨어뜨려 놨던 이동량은 이미 다 회복됐다.”
-최근 환자 발생 양상은.
“한동안 요양병원 환자들이 입원을 주로 했는데, 딱 2~3일 전부터 지역사회에서 생활하셨던 70·80대 어르신들이 응급실로 들어와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올라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델타 변이 확산 초기에도 이랬다. 안 좋은 조짐이다.”
-정부는 중환자 2500명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데.
“병실이 있으니 이론적으론 감당 가능하다. 문제는 의료진 확진이다. 중증환자가 2500명에 이른다는 건 지역사회 확진자가 30만명 정도 된다는 의미일 텐데, 그 정도라면 코로나19 병동 간호사나 의사 중 상당수가 감염을 피할 수 없다. 우리 병원에 흉부외과 교수 두 분이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를 돌려주고 있는데, 이분들이 격리되면 에크모를 못 돌린다.”
-유행 정점은 언제.
“바이러스가 가는 대로 갈 거다. 전엔 정부가 유행을 꺾을 대책을 내놨다. 아무 조치를 하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정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꺾일 이유가 없다. 유행 규모가 너무 커져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동량을 줄이면 달라지겠지만.”
-피해 지연 전략이 유효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유행이 빨리 정점을 치게 되면 감당을 못 한다. 미국에선 앞선 유행 폭증의 영향으로 하루 3000명씩 사망하고 있다. 국내도 정점이 커지면 이어지는 3~4주간 줄초상이 날 거다.”
-오미크론 유행을 둘러싼 낙관론도 있는데.
“올해 안에 실외 마스크 해제 정돈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오미크론 유행이 끝나면 올여름에 소강기, 소위 ‘허니문 피리어드’가 올 것으로 본다. 그다음 어떤 양상으로 갈지는 전적으로 새 변이에 맡길 수밖에 없다. 과도한 낙관론은 위험하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델타 변이의 유행을 예상했던 전문가가 없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그간 바이러스에 등 떠밀려 만들어낸 장치들을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내과 진료를 볼 수 있는 의료기관이라면 코로나19 환자를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가 병상을 배정하고 있는데, 최중증 환자나 투석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다시 전 같은 체계를 회복해야 한다. 또 격리지원금은 상병수당으로, 의료기관 손실보상은 수가 재조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오미크론에 대응 체계 보완점은.
“의료전달체계 앞단이 아쉽다. 특히 재택치료 일반관리군은 119를 부를 지경이 돼서야 입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병상 여력이 사라져야만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건 아니다. 트리아지(환자 분류)가 잘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의원급에서 환자를 상급 병원에 입원시킬 경로가 마땅치 않다. 병상 배정 창구를 제대로 만들어주든지, 아니면 아예 의원이 감염병전담병원에 직접 환자를 의뢰하게 해줘야 한다.”
-대선으로 방역 전략 부재 관련 우려가 나오는데.
“인수위에서부터 코로나19 대응 체계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다만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방역 정책이 연속성 있게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당장 지금 상황의 책임을 물으면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을 쑥대밭 만들지 않겠나.”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