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의 핵심 증거물인 ‘정영학 녹취록’에 담겨 있던 법조계 고위직들의 이름이 하나씩 외부에 공개되고 있다. 일부는 수사를 받거나 기소가 예정됐지만, 적잖은 수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과 만난 적도 없다며 황당해 한다. 대선 국면에서 검찰은 말을 아끼고, 김씨가 거론한 인물의 정체를 놓고 정치권마다 제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20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은 정영학 녹취록에서 A 대법관 관련 내용을 지난해 10월 이미 인지하고 검토했지만, 범죄 혐의로 의심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일보는 김씨가 A 대법관을 지칭하며 “내가 원래 50억을 만들어서 빌라를 사드리겠습니다”라고 언급한 녹취록이 있다고 보도했었다. 검찰 관계자는 “의혹 초기부터 나왔던 얘기”라며 “단계별로 규명이 돼야 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김씨의 A 대법관 관련 언급이 범죄 혐의를 조사할 만한 정황까지는 못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A 대법관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씨와 인사를 나눈 적도, 통화를 한 적도 없다”며 “휴대폰에 김씨의 전화번호도 없다”고 했다. 김씨가 언론사 법조팀장으로 근무했던 때에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김씨가 A 대법관 인척들의 거처를 마련해 줬다는 의혹마저 제기됐지만 A 대법관은 “0.001%도 관련된 게 없으니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다.
문제의 녹취록에서는 A 대법관뿐 아니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거론됐다. 우 전 수석 측도 입장문을 내고 “김씨를 만나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김씨 스스로가 신빙성을 부정한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정영학 녹취록 내용은 과장되게 부풀려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씨의 대화가 채록된 정영학 녹취록의 분량이 방대한 만큼 유명인사가 거론되고 당사자는 김씨 등과의 관계를 부인하는 모양새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대장동 핵심 인사들의 기소 이후 법원은 정영학 녹취파일 원본에 대한 열람 등사를 허용했다. 검찰 내부에선 “녹취를 다 듣기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사실관계 확인 등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반면 정치권과 여론의 해석은 더욱 분분해지고 있다. ‘그분’이 A 대법관을 지칭한다는 언론 보도 이후 여권에서는 대장동 비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사이의 무관함이 드러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여기서의 ‘그분’이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 논란을 일으킨 ‘그분’과는 다른 맥락에서 말해진 것이라고 본다.
대장동 민간사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된 곽상도 전 의원은 이번 주 재판에 넘겨진다. 곽 전 의원의 구속 만료일은 오는 23일 자정이다. ‘50억 클럽’으로 거론된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권순일 전 대법관에 대한 처분은 향후 이뤄질 전망이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