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피난 떠나는 분쟁지역 주민들

입력 2022-02-21 04:05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역 돈바스의 도네츠크주에 사는 한 남성이 19일(현지시간) 러시아로 대피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 딸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딸이 차창에 사랑한다는 의미로 하트를 그려 놓은 게 인상적이다. 친러시아 반군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전쟁 가능성이 커졌다며 관내 주민들에게 군 총동원령을 내렸다. 여성과 아이 등에겐 대피령을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 지역 돈바스(도네츠크·루간스크주) 주민들이 갈수록 고조되는 전쟁 분위기에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다.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반군 분리주의 정부가 관내 주민들을 러시아로 대피시키기로 하면서 주민들은 행선지도 모른 채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도네츠크주 한 마을에 거주하는 인나 샬파는 자신의 세 아이와 함께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러시아가 미리 준비해 둔 피난 버스를 탔다. 그는 그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전쟁의 위험성 대신 미래의 불확실성을 택했다.

앞서 도네츠크 반군(DPR) 수장 데니스 푸쉴린은 어린이와 여성 등 6600여명이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루간스크 반군(LPR) 수장 레오니트 파세치니크도 관내 주민들에게 최단 시일 내에 러시아로 떠날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쪽 국경검문소를 개방하고 피난민 캠프를 마련했다. 이어 이들에게 1인당 130달러(15만5000원) 지원 방침도 밝혔다.

인명 피해 소식도 속속 들려오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이날 루간스크에서 민간인 2명이 정부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LPR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LPR은 러시아 국경과 7㎞ 떨어진 한 마을 인근에서 정부군 공격으로 민간인 2명이 숨지고 주택 5채가 파손됐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돈바스 등 분쟁 지역에서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 포격이 최근 사흘간 10배 증가했다. 매체는 최근의 이러한 무력시위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구실을 만들기 위한 작전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반군 지역 주민들도 반군 지도자나 러시아의 말을 100% 신뢰하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피난길에 오른 한 주민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았는데 이젠 상관없다”며 “우린 평화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루간스크 한 마을에 사는 다이애나 레베네츠는 “이번 포격 전에 6년간 포격이 없었다. 러시아가 하는 평화로운 말이나 의도를 난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