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현실된 ‘문과 침공’… 이과생, 주요대 인문계 점령

입력 2022-02-21 00:03
연합뉴스

2022학년도에 도입된 ‘문·이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 여파로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이 현실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학 미적분·기하를 선택한 이과생이 수학에서의 압도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주요 대학 인문계열에 대거 합격한 것이다. 문·이과 유불리(수학 선택과목 유불리) 문제와 이과생들의 문과 교차지원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을 것이란 교육부의 장담은 결과적으로 ‘허언’이 됐다.

서울교육청 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20일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을 대상으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 22개 대학 중 8개 대학 인문계열에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서강대(80.3%) 서울시립대(80%) 한양대(74.4%) 연세대(69.6%) 중앙대(69.3%) 경희대(60.6%) 건국대(60.6%) 서울대(60.0%) 순이었다.

입시업체 진학사의 분석도 비슷했다. 서울대의 경우 과학탐구 응시자가 인문계열에 지원한 비율(교차지원 추정 비율)은 2021학년도 0%에서 2022학년도 27%로 뛰었다. 입시 전문가들은 문과생이 재수 혹은 ‘반수’(대학 다니며 대입 재도전)로 내몰릴 것으로 전망한다. 고교에선 수학과 입시 컨설팅 사교육 수요를 급증시킬 것으로 내다본다.

무책임한 정치권과 오락가락 교육부의 합작품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초 문·이과 통합 논의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잡스형 인재’를 키우자는 학계 요구를 박근혜정부가 수용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당시 정부는 2015년에 문·이과 통합을 지향하는 교육과정(현행 교육과정)을 완성했다. 다만 교육과정이 대입제도에 좌우된 악순환을 끊는다는 이유로 2017년에 대입 개편안을 발표키로 했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의 최대 난제는 수학 통합이다. 수능 영향력을 줄여야 연착륙이 가능하다. 정시가 확대되는 상황에선 파열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는 ‘물수능’ 논란에도 쉬운 수능 기조를 유지하면서 수시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렸다. 문·이과 통합 수능의 밑그림이 완성될 무렵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고, 수능 절대평가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정부가 들어섰다. 당시 교육부는 수능 절대평가와 수시 확대를 담은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수시 공정성 논란에 휘말렸다. 이후 현 정부는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는 ‘공약 역주행’을 벌였고, 수능 변별력 유지를 위해 ‘불수능’ 기조로 전환했다.

수학 통합은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시험범위와 난이도를 문과에 맞추면 이공계에서 학력저하 이슈를 들고 나왔고, 이과생에 초점을 맞추면 문과의 학습량이 폭증하는 것이다. 결국 문과생은 ‘확률과통계’, 이과생은 미적분 혹은 기하를 선택하는 어정쩡한 형태로 절충했다. 교육부는 보정점수라는 장치를 도입해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를 줄이려 했으나 작동하지 않았고, “문·이과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