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저출산 더 심각한데… “낳으면 돈 줄게”식 공약 재탕

입력 2022-02-21 04:04
게티이미지

가뜩이나 심각한 저출산 현상에 코로나19 사태는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꼴이다. 코로나19로 사회활동이 위축되면서 혼인 건수와 출산율이 급격히 줄면서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이미 지난해부터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이런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여야 두 유력 대선 후보는 저출산 관련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하지만 공약 대부분은 현 정부가 하고 있는 재정지출을 더 늘리겠다는 데 그쳤다. 청년들에게 ‘애 낳고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보다 ‘애 낳으면 나라에서 돈을 더 주겠다’는 임기응변식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총인구는 5174만명(추산)으로 1년 전(5183만명)보다 9만명 줄었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첫 인구 감소다. 코로나19로 혼인 건수가 줄었고, 국가 간 이동 제한으로 인구 유입이 줄어든 탓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2020년 기준 0.84명인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0명으로 내려앉고, 최악의 시나리오(저위 추계)로는 2025년 0.61명으로까지 떨어진다.

정부는 2021~2025년 9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저출산 극복 5대 패키지 과제’를 설정해 실행 중이다. 부부 공동 육아휴직제, 육아휴직 지원금(중소기업 최대 월 200만원), 0~1세 영아수당 월 30만원 지급, 첫 만남 이용권 200만원 지급 등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결혼이나 출산을 고민 중인 청년층을 위한 세금·금융 제도 개선, 육아·돌봄 지원 확대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제4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한 상태다.

현 정책과 별 차이 없는 저출산 공약

유력 양당 주자의 저출산 관련 공약을 보면 현재 시행 중인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돌봄지원 강화를 들고나왔다. 아동이나 영유아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게 하고, 육아휴직 급여액을 늘리는 방법으로 맘 놓고 애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또 육아에 대한 부부의 공동책임을 강조하며 남성의 육아휴직을 일정 기간 강제하는 ‘부모 쿼터제’와 아이가 출산하면 자동으로 육아휴직이 등록되는 ‘자동등록시스템’을 공약했다.


이 후보는 “지금까지는 ‘여성을 어떻게 하면 일터로 보낼까’ 고민했다면 이제는 ‘남성을 어떻게 집으로 보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며 남성 육아휴직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원금으로 육아휴직을 독려하는 방법에서 나아가 육아휴직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현 정책은 생후 12개월 이내 자녀를 둔 부모가 육아휴직을 쓰면 첫 3개월 동안 각각 통상임금의 100%(월 최대 300만원)를 육아휴직 급여로 지급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출산 후 1년 동안 부모 급여 월 100만원 지급, 육아휴직 기간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부모가 각각 1년6개월씩 총 3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하겠다고도 공언했다. 공약집에서 윤 후보는 “양육 부담 문제로 출산 기피 현상이 만연한다”면서 “모든 임신·출산(희망) 가정과 영유아가 있는 가정에 대한 적절한 서비스(검진, 치료, 건강관리, 양육서비스) 이용 보장과 경제적 지원 제공으로 출생률 회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출산한 부모에게 월 10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은 아이를 낳으면 200만원의 ‘첫 만남 이용권’을 주는 현 정책에서 돈을 좀 더 주는 셈이다. 저출산 관련 예산은 매년 조 단위로 투입되지만 재정 투입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정책 설계가 중요한데,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 현 정책을 조금씩 변형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저출산 공약도 현 정책을 재탕하거나 예산 투입으로 해결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심 후보는 아동수당을 현재 만 8세에서 만 11세(초등학생)까지 확대하고,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을 50%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는 반값 공공 산후조리원 설립, 공공보육시설 확대 등을 들고나왔다.

정부 지원받는다고 애 더 낳을까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정부 지원금과 자녀 수는 비례해 늘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정부 지원금을 받은 가정은 그 돈을 둘째, 셋째 아이를 낳는 데 쓰지 않고 출산이 아닌 다른 지출에 쓰는 경향을 보인다. 이 밖에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모든 가정이 자녀 수에 따라 지원금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가정은 출산을 늘리는 반면 부유한 가정의 자녀 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출산에 따른 세제 혜택 역시 부유한 가정이 더 많이 누리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미시경제학의 관점에서 본 출산 정책’ 보고서에서 “프랑스를 포함해 여러 국가의 출산 정책이 출산 증가에 기여했다는 일관된 실증연구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출산 정책에 따른 많은 부작용을 고려할 때 세금 징수를 통한 출산 정책을 확대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급하다”고 주장했다.

양당 후보의 저출산 공약은 모두 재정지출을 기본으로 하는 현 정부 정책과 상당부분 겹친다. 보육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은 마땅히 해야 할 복지정책이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는 보기 어렵다. 정책 효과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공약을 찍어내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두섭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쏟아부은 저출산 관련 재정이 효과가 있었는지 평가하는 작업도 없이 수당을 더 주면 애를 낳을 것이라고 보는 대선 후보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