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 연령 낮아지고 만혼 등
호르몬 불균형 유발 등이 원인
림프절 절제 않고 로봇수술 대세
생리기간 아니거나 폐경 후에도
이상 출혈 땐 초음파검사 받기를
호르몬 불균형 유발 등이 원인
림프절 절제 않고 로봇수술 대세
생리기간 아니거나 폐경 후에도
이상 출혈 땐 초음파검사 받기를
다소 비만한 체격의 최모(19)씨는 3년 전 생리 과다를 동반한 잦은 출혈로 집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배란장애와 생리불순을 초래하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진단받고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으나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다시 대학병원을 방문했다. 골반 초음파검사를 통해 자궁 내막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진 것을 알게 됐고 조직검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자궁 내막암이 발견됐다. 다행히 암세포가 주변을 침범하지 않은 초기(1기) 상태라 향후의 임신·출산을 감안해 수술하지 않고 1년간 먹는 약물(호르몬제)치료로 암을 없앨 수 있었다.
여성암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자궁 내막암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1990~2000년대 초 부동의 여성암 1위였던 자궁 경부암이 조기 검진(국가암검진)과 예방백신 접종의 영향으로 빠르게 줄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자궁 내막암이 절대 다수(97% 이상)를 차지하는 자궁 체부암은 2018년 여성암 발생 순위 10위에서 2019년 9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반면 자궁 경부암은 같은 기간 8위에서 10위로 내려앉았다.
가톨릭의대 은평성모병원 산부인과 이용석 교수는 21일 “몇 년 전만 해도 자궁 내막암은 여성암 10위 안에 들지 않았는데, 2019년부터 부인과 암 중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것은 20~30대 젊은층이 환자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기준 만 15~34세의 자궁 체부암 발생률은 전체 여성암 중 5위를 차지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자궁의 가장 안쪽을 이루는 조직인 내막은 호르몬 영향에 따라 한 달에 한 번씩 두꺼워졌다가 떨어져 나가면서 생리가 발생한다. 그런데 에스트로겐 등 여성 호르몬이 과다하면 자궁내막 세포의 증식이 비정상적으로 촉진되면서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발생 확률도 높아진다. 초경 연령이 낮아지고 결혼을 늦게 하거나 임신·출산을 기피하는 등 호르몬 불균형을 유발하는 사회 변화상이 내막암 증가와 무관치 않은 이유다. 에스트로겐을 증가시키는 비만, 다낭성난소증후군을 겪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 유방암 환자가 늘면서 호르몬 치료(타목시펜 등 복용)를 오래 받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 또한 내막암 위험을 높인다. 호르몬제 장기 사용자들은 정기 검진을 게을리해선 안된다. 유전적 요인도 있다. 이 교수는 “특히 ‘린치 증후군’이 있는 여성은 자궁 내막암에 걸릴 확률이 40~60%에 이른다”며 “린치 증후군은 50세 이전에 특정 유형의 암 발생 가능성이 일반인 보다 높은 유전질환인데, 직계 가족 2명 이상에서 암 병력(자궁내막·유방·대장·난소암 등)이 있다면 의심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폐경 전인 여성이 자궁 내막암 진단을 받으면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지 꼭 살펴봐야 한다.
자궁 내막암은 초기에 증상이 뚜렷하지만 인지하지 못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불규칙한 생리와 생리 과다, 생리가 아닌 이상 출혈이 있으면 내막암을 의심할 수 있다. 특히 폐경 이후 출혈이 발생하는 여성은 꼭 자궁 내막암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생리 기간이 아닌데, 이상 출혈이 생겼다면 산부인과 검진을 통해 초음파 검사가 권고된다.
자궁 내막암은 초기라도 자궁과 난소 양쪽을 제거하는 수술 치료가 원칙이다. 자궁 경부암이나 난소암 등 다른 부인암에 비해 수술 성적이 좋다. 필요에 따라 주변으로 전이 여부 확인, 병기 설정, 후속 치료법 결정을 위해 골반 및 주변 림프절 절제를 수술과 동시에 시행한다. 문제는 이런 림프절 절제가 필히 다리가 퉁퉁 붓는 부종 등 합병증 발생률을 높여 완치 이후 삶의 질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다행히 2020년 11월부터 림프절 절제 없이 암 전이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감시 림프절 검사법)이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아 의료 일선에서 적용 사례가 늘고 있다. 감시 림프절은 암의 전이가 가장 먼저 발생하는 곳이다. 여기에 암세포가 퍼졌는지 확인하면 전체 림프절을 잘라내지 않고도 전이 상태를 알 수 있고 그에 따른 후속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 기존에는 자궁 내막암 환자, 특히 초기 환자의 대부분이 림프절 전이가 없음에도 림프절을 잘라내 확인하는 것이 표준 치료법이었다. 그에 따라 30~40%에서 부종이 발생하는 등 합병증과 수술 시간 및 의료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가 있었다. 감시 림프절 검사법은 암세포만을 형광으로 염색시키는 색소를 수술 중 암 주변에 주입한 뒤 빛을 쪼여 형광 발현 영상을 얻는 기술이다. 이 교수는 “이 검사법을 통해 림프절 절제가 불필요한 자궁 내막암 환자를 효과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 초기 자궁 내막암 치료의 패러다임 변화를 불러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술은 병기나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은 개복하지 않고 복강경(구멍 1개만 뚫어 진행)이나 로봇을 활용한 최소 침습 수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최근 젊은 자궁 내막암 환자가 급증하면서 임신·출산을 고려한 약물 치료(먹는 호르몬제 혹은 자궁 안에 약물 분비 장치 삽입)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다만 약물 치료의 성공률은 50% 정도이고 환자에 따라 효과가 없거나 재발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의료진과 상담을 통해 면밀한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교수는 “자궁 내막암은 이상 출혈 등 초기 증상이 비교적 뚜렷해 증상 발생 즉시 가까운 산부인과를 찾기만 해도 일찍 발견할 수 있는데, 몇 년씩 방치하다 진행된 후에 오는 안타까운 환자들이 아직 많다”면서 “조기 발견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건강검진에 골반(질)초음파 검사 항목을 넣는 것도 정책적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