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화려한 왕좌, 민선 단체장

입력 2022-02-21 04:02

“난 성공하고 싶었고, 행복하고 싶었고,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어. 난… 무죄야!” 최근 방영됐던 드라마 ‘빨강 구두’의 티저 영상에서 화려한 왕좌에 앉아 도도한 눈빛으로 야망을 발산했던 배우 최명길의 대사다. 젊은 시절, 이런 욕심 없는 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이 장면을 보며 지방자치제가 본격 도입된 1995년 이래 일부 민선 단체장들의 부패 사례가 어른거림은 웬일일까. 그동안의 지방 단위 부패 사례를 보면, 부패 행위는 주로 기초단체장 중에서도 시장·군수들에게서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장 많은 유형이 인허가, 입찰이나 계약, 지역 개발, 인사권 남용 비리였다. 소위 ‘법’ 무서운 줄 모르는 선출직 단체장 중에는 은밀하게 접근하는 불법에 처음엔 눈을 감고 나중엔 적법으로 포장된 요구에 익숙해져 결국 추락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법치와 민주 및 복지라는 행정의 지도원리는 국가를 유지함에 있어 등가적이어야 함에도 그동안 민주를 앞세우며 법치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나 반문해 볼 일이다. 1987년 6·29 민주화선언 이후 ‘형식적 법치’로 지배하려던 정부의 기조는 민주화 물결에 뒤집혀버렸다. 직선제 개헌과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의 완충기를 넘기며 초등학교 교실에서까지 풀뿌리 민주주의를 설파했고, 당시 전국에서 물밀듯이 분출하던 지방분권운동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민주’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른 중요한 가치인 ‘법치’의 예외, 즉 ‘치외법권적 민주’로서 인식돼 왔다고 한다면 과한 것일까.

이렇게 탄생한 민선 단체장들이 얼떨결에 얻은 지방행정 권력을 행사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직 윤리의식 결여, 정치와 지방선거 연계, 중앙정부 중심의 과도한 법·제도, 동양적 유교문화에 터잡은 사회문화적 요인들은 ‘법치와 자치의 조화’를 어렵게 했다. 특히 뿌리 깊은 지역주의는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단체장과 같은 방향을 지향케 함으로써 제 본분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것은 단체장 독주를 정당화시켜주는 일이었고, 민주화가 잉태한 또 다른 병폐였다.

민주화 요구로 주민의 권리는 확장됐지만 법은 계속적으로 주민 권리 확장에 허들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민선 단체장들이 견제 없이 권한을 맘껏 휘둘러도 속수무책이었다. 단체장 독주에 의회가 제 기능을 못하면 주민이라도 나설 수 있어야 함에도 그것을 어렵게 해뒀으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단체장은 무서울 게 없는 ‘화려한 왕좌’에 앉은 ‘지방의 제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사나 계획·개발 행정 등 자치행정권은 특히 자신에게 권력이 집중되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가진 인사자치권은 해바라기 공무원을 양산했고, 법률은 공무원 유형을 다양화해 권한을 강화시켜 줬다. 지방공무원법은 전통적 공직 진입 방식을 단순화한 후 민간 개방 확대에 그치지 않고 일반임기제·전문임기제 등 다양한 유형의 임기제 공무원까지 임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임용 전제 요건을 무시한 인사권 전횡을 가능케 했다. 이런 자의적 인사권 행사를 견제해야 할 의회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행정계획이나 도시개발에 있어 단체장의 권한은 더욱 막강하다. 신뢰 보호나 비례 원칙에도 불구하고 계획행정에 있어 광범위한 재량권이 인정돼 이를 뒤집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발 순위 선정은 결정권자인 단체장 의사에 좌우되도록 했고, 각종 계획의 수립권과 입안·결정권을 기초단체장에게까지 광범하게 허용했다. 주택법상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 도시개발법상 도시개발구역 지정과 개발계획 수립 및 사업시행자 지정 등의 권한까지도 인정했다. 그렇다 보니 대장동 사건과 같은 것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다.

과연 민선 단체장들에게 법적 허용 범위 안에서 권한의 자제를 기대할 수 있을까. 권력분립이론이 인간에 대한 근본적 불신에서 태동했듯이 법률이나 형벌에 의해 강행적으로 제약을 하지 않는 한 자발적 준법은 기대하기 어렵다.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청탁금지법 등 부패 방지 시스템과 지방자치법상의 주민감사청구·주민소송·주민소환 등 물적 책임과 인적 공직 배제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전반적으로 재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민선 단체장 그들은 언제까지 화려한 왕좌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공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