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불신하는 美, 도발하는 北

입력 2022-02-21 04:08

미국과 북한,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다르다. 북·미 회담 재개 가능성이 난망한 상황에서 북한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벼랑 끝 전술로 한반도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킬 가능성이 우려된다.

북한이 연초 미사일을 7차례 발사하고 지난달 19일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재개할 수 있음을 공언했음에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요지부동이다. 12일 개최된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후 공동성명에서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나머지는 전혀 새롭지 않다. 특히 북한이 작년 6월 이미 공개적으로 거부한 ‘전제 조건 없는 대화’를 다시 요구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철저한 불신에 기반해 북한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원칙이 핵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외교·안보팀은 오바마 행정부 때 경험한 북한의 ‘나쁜 행동’으로 인식이 고정되고 행동이 규제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출범 직후부터 북한을 포함해 미국과 오랜 적대 관계에 있던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전문적 외교 식견을 가진 바이든 부통령과 현 정부 외교·안보 최고위직에 있는 커트 캠벨, 토니 블링컨, 제이크 설리번, 웬디 셔먼 등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그러나 북한이 2009년 1월 13일 핵보유국 인정 및 핵군축 협상을 주장하고 4월 5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후 5월 2차 핵실험까지 감행함으로써 대화의 문을 닫았다.

미국은 김정은이 집권한 후 우여곡절 끝에 2012년 2·29 합의를 체결했다. 북한은 “위성 발사가 합의를 무산시킬 수 있다”는 미국의 경고에도 4월 13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감행해 합의를 파기했다. 바이든을 포함한 현 행정부 핵심 인사들의 대북관이 바뀌는 계기다. 이전까지 바이든은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했지만 2012년 2월 이후 북한을 “깡패 국가”, 김정은을 “독재자”로 칭하면서 극도의 불신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2022년 2월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몽니를 수용할 생각이 없다. 뿌리 깊은 불신으로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소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약점을 잘 안다. 지지도가 바닥을 보이면서 특히 대외 정책에서 낙제점을 받는 상황을 파고든다.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깨고 ICBM을 발사하면 바이든 행정부는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민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지난달보다 6%나 상승한 휘발유값에 가장 분노한다. 그러나 작년 8월 아프간 철군의 악몽 이후 다시금 북한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발사한다면 바이든 행정부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크다. 미 폭스뉴스가 1월 16~19일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은 대외 문제에서 북한 미사일을 가장 높은 위협으로 인식한다. 북한은 모라토리엄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지난 16일 김정일 생일을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지만, 올해를 ‘혁명적 대경사의 해’로 선포한 더 큰 이유인 김일성 110회 생일(4월 15일)을 기점으로 승부를 걸어올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불명확하다. 대북 불신에 기반한 무시의 임계점이 ICBM 발사로 깨질지, 강경으로 선회한다면 정도는 어떨지 많은 의문이 든다.

실상 북한의 핵 위협은 한국에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남의 이야기를 하는 듯해 자괴감이 깊다. 3월 9일 결정되는 새로운 한국 정부에 불신 가득한 미국과 도발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북한을 아우르며 당면한 핵 위협을 최우선으로 억제하는 제대로 된 정책의 이행을 기대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