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캠프에 다녀온 한 엄마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 아이가 내려오길 기다리며 사람 구경을 하다가 헬멧과 고글로 얼굴을 모두 가리니 그 안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알기 어렵더란 얘기를 했다. 아이들을 인솔하는 진중해 보였던 강사가 알고 보니 스무 살 앳된 청년이었고, 젊은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온다고 생각했는데 흰머리 가득한 멋진 노인이더란다. 차림새를 보고 대략은 짐작이 되지 않더냐고 물었더니 스키복이 다 비슷해서인지 의외의 장면이 많았다고 했다. 오히려 처음 가졌던 느낌이 맞지 않았을까 싶다. 스무 살이지만 진중한 사람이었고, 흰머리가 많아도 젊은 기운을 가진 분이라고.
차림새는 알게 모르게 나를 많이 드러낸다. 옷차림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남들과 다르고 싶은지 비슷하고 싶은지 정도는 드러난다. 오늘 입은 옷은 나를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고, 닮고 싶은 모습을 투영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위장되기도 한다. 셋 사이에 차이가 크면 뭘 입으면 좋을지 고민이 길어진다. 은연중 매일 반복되는 자기 검열로 감춰진 자기표현 욕구가 꽤 크다고 해서 가상세계에서 나를 대리하는 아바타는 현실보다 더 과감한 모습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한 메타버스 플랫폼 담당자 얘기는 다르다. 메타버스에서 구입해 차려입는 아바타 옷들이 현실과 상당히 비슷하단다. 스타일도 의외로 평범하고 잘 팔리는 브랜드도 현실 순위와 비슷하더라는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것 같다. 아바타를 꾸미긴 해야겠어서 별 생각 없이 대충 골라도 결국 현실의 나와 비슷해지곤 한다. 알록달록 머리와 과한 의상은 굳이 고르지도 않지만 한 번 시도해봤다가도 가상공간에서 만날 친구나 지인이 떠올라 그만둔다. 가상현실 속에서도 자기 반영과 검열은 이어진다. 그래도 메타버스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별로 다른 설정을 할 수 있다니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여럿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