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없어 전역 내려 20분 이동 “항의에 씁쓸… 어려움 알아줬으면”

입력 2022-02-18 04:06
장애인단체 활동가 유진우(가운데)씨가 16일 서울지하철 4호선 전동차 안에서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택시 등 이동권 보장 예산을 늘려 달라며 지난해 말부터 지하철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제16차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예정된 16일 오전 5시. 선천성 뇌병변 장애가 있는 장애인단체 활동가 유진우(27)씨가 사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원룸에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집결 약속은 오전 7시30분 서울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지하철로 20분 거리지만 휠체어로 이동하는 유씨는 오전 6시40분 일찌감치 전동휠체어에 몸을 실었다.

휠체어를 탄 유씨는 중간중간 행인이나 차량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이동했다. 험난한 이동 끝에 우이신설선 화계역 1번 출구가 보였다. 그러나 그는 건널목을 한 번 더 건너 2번 출구로 향했다. “2번 출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곧장 하행선 개찰구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휠체어로는 역에 들어가는 출입문을 여는 것부터 쉽지 않다. 그가 엉덩이를 휠체어에서 떼 팔을 뻗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중심을 잃고 문손잡이를 놓치는 바람에 기자가 급하게 그를 잡았다. 역에 들어선 유씨는 어르신들과 줄을 선 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곳은 그나마 엘리베이터가 잘 갖춰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씨는 “명동역에는 엘리베이터나 리프트도 없어 회현역에서 내려 20분을 휠체어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도착한 유씨는 다른 장애인 2명과 휠체어를 타고 전동차 탑승과 하차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1시간30분가량 시위를 했다. 이들이 시위에 나선 건 ‘국제 장애인의 날’인 지난해 12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원 예산을 늘려 달라며 지하철 시위에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달 정부와 대화를 진행하며 요구사항을 전달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이후 전장연은 지난 3일부터 매일 아침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중이다.

이날도 이들의 시위로 열차가 평소보다 적게는 1~2분, 길게는 5분가량 지연 출발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며 시위 배경을 설명했지만 곳곳에서 항의가 쏟아졌다. 한 승객은 “정도껏 해라. 이걸 매일 하고 있냐”며 고함쳤다. 다른 승객도 “왜 우리가 피해를 받아야 하냐. 이런 방식이 맞느냐”라고 항의했다. 박 대표는 “청와대도 국회도 다 다녀왔지만 바뀌는 게 없었다. 방법을 같이 고민해 달라”고 재차 호소했다.

유씨도 자신들을 향한 시민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전날엔 사무실 앞에 한 청년이 찾아와 다짜고짜 유씨에게 “너 시위하던 놈 맞지? 팔까지 부러뜨려줄까 XXXX야?”라며 욕설을 날렸다. 지난 14일에는 ‘지하철 시위에 대해 엄하게 형사처벌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시위가 끝난 오전 9시30분. 유씨는 “(시위가) 좀처럼 익숙해지지는 않는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욕먹더라도 관심을 받는 게 낫다”며 “시민들이 한 번쯤은 우리의 고민과 어려움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