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친러시아 반군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7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서방국가들 간 갑론을박이 벌어지며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가 자국 상공과 영토를 지나는 모든 미사일을 “핵공격으로 간주하겠다”며 군사대응 태세를 더욱 높이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 루마니아, 발트3국 등 동유럽에 군사력 배치를 증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당초 러시아의 침공 움직임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를 넘어 미국과 서방 중심의 나토 대 러시아의 전면 대결 양상으로 전환돼 전 유럽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미하일 포포프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이 로시스카야가제타와의 인터뷰에서 “첨단 (미사일 감지) 시스템은 발사된 미사일을 빠르게 포착할 수 있지만 핵무기 탑재 여부는 식별할 수 없다”면서 “군사적·정치적 긴장 속에서 우리는 모든 미사일 발사를 핵공격으로 인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포포프 부위원장의 발언은 “러시아에 대한 억지력은 더 결정적이어야 한다”며 핵무기 사용까지 시사한 안네그레트 크람프 카렌바우어 독일 국방장관의 언급에 맞선 것이다. 그는 “독일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카렌바우어 장관의 발언은 나토 기지에 전술핵 배치와 연결돼 있고 미국의 핵무기 사용을 암시한다”며 “핵무기를 배치할 경우 독일 내 미국 시설들은 보복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나토 중심 국가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동유럽 전력을 급속하게 보강하고 있다.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회의에서 이들 회원국 장관들은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에 신규 나토 전투병력 배치를 포함, 억지력과 방위력을 증강하기로 합의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이제 러시아의 (유럽) 위협은 ‘뉴노멀’이 됐다”면서 동유럽 동맹국에 대한 국방력 강화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동유럽에 장기적으로 나토군 병력을 주둔시키는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한 방안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신규 병력을 배치하고,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 슬로바키아에도 병력 배치를 검토하는 것이다. 앞서 프랑스는 루마니아에 자국 전투부대를 파견하겠다고 제안한 상태다.
나토는 또 러시아의 동맹국인 벨라루스 국경과 접한 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폴란드에도 기존 주둔 병력 외에 추가 병력을 배치하는 방안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벌써 미국은 최정예인 82공수사단 병력 3000명을 폴란드에 추가 파견키로 한 바 있으며, 독일에 주둔 중인 미군 1000명도 루마니아로 전환 배치했다. 영국도 폴란드에 수백명의 군인을 파견할 예정이며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도 리투아니아에 추가 병력을 보내기로 했다.
러시아는 거듭 우크라이나 등 옛 소련 소속 국가들을 동맹으로 받아들이는 움직임을 멈추고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발트 3국 등 러시아 인근 나토 가입국들에 공격 무기를 배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당분간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동유럽 전체로 번진 안보 위기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