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일터에서의 죽음

입력 2022-02-18 04:08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설 연휴 첫날 노동자 3명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토사가 큰 물줄기를 이룬 것처럼 무너져 내린 경기도 양주 채석장 흙더미 아래 그들은 매몰됐다. 그날 사고 현장으로부터 300여㎞ 떨어진 광주에도 일터에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양주 사고 18일 전 아파트 공사장 외벽 붕괴로 매몰된 6명 중 5명을 그때까지 수습하지 못한 것이다.

두 사고 사이엔 중대재해처벌법이 놓여 있다. 법 시행 전 사고가 일어난 HDC현대산업개발은 회장이 물러났지만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들은 수사 선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 반면 법 시행 이틀 후 사고가 난 삼표산업은 대표이사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두 회사는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현장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점에선 같지만 사고 시점에 따라 수사가 미치는 범위는 갈렸다.

사업주, 경영책임자의 안전 의무를 강화한 법 시행에도 일터에서의 죽음은 멈출 줄 모른다. 1호 수사가 시작되나 싶더니 2호, 3호가 잇따랐다. 경기도 성남에서 승강기를 설치하던 2명이 추락사한 후 전남 여수산단에선 폭발 사고로 4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당했다. 우연히 사건이 몰렸다기보다 법 시행에 쏠린 관심이 평소와 같은 사고를 더 크게 보이게 했다는 말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828명으로 하루 평균 2명 이상이 세상을 등졌다.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라는 게 그 정도다.

아직 법을 적용할 수 없고, 언론 관심이 덜한 사고까지 더하면 죽음은 더 많다. 중대재해법 시행 당일에도 김포 고무·플라스틱 제조공장과 인천 상가건물 공사장에서 작업자 2명이 추락사했다. 끊이지 않는 죽음은 소설가 김훈의 말처럼 ‘초대형 사고’다. 그는 ‘개별적 고통을 생각하며’라는 글에서 “날마다 발생하는 ‘소형 사고’의 누적된 피해자들이 ‘대형 사고’의 피해자들보다 훨씬 더 많으니까 거듭되는 소형 사고는 ‘초대형 사고’입니다”라고 썼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법에 대한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부터 나온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 상황에서 처벌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다’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은 좀 더 촘촘한 법을 위해 적어도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대표를 감옥에 보내는 법’이란 비판은 법의 취지와 현실에 애써 눈감은 악다구니처럼 들린다.

오히려 법 적용 과정에서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사망 사고 상당수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법을 적용해 처벌에 이르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모호하다는 비판은 거꾸로 대형 로펌의 도움을 받는 대기업에 대한 처벌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실제 1호 수사 대상이 된 삼표산업은 김앤장과 광장을 선임했고, 다른 수사 대상들도 대형 로펌을 방패로 내세웠다.

중대재해법이 유사한 법이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은 역설적으로 기존 법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함을 방증한다. 현장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업주,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강조한 것은 처벌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의지 없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힘들단 판단 때문이다. 아울러 하청업체, 비정규직, 특성화고 실습생처럼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이들이 한없이 위험한 현장으로 밀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연결 고리를 만든다는 의미도 있다.

“안전은 권리입니다.” 3년 전 안전보건공단이 내건 슬로건이다. 이 말처럼 일터에서의 안전은 시혜가 아닌 권리다. 법이 이를 뒷받침했으면 한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