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전략 들고 나온 푸틴
치킨게임하듯 맞서는 바이든
우크라이나를 체스판 삼아
거대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모양새로 싸움이 끝나든
강대국 명분·실리 챙길 미·러
결국 이 위험한 게임의 패자는
우크라이나일 수밖에 없을 듯
치킨게임하듯 맞서는 바이든
우크라이나를 체스판 삼아
거대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모양새로 싸움이 끝나든
강대국 명분·실리 챙길 미·러
결국 이 위험한 게임의 패자는
우크라이나일 수밖에 없을 듯
지난 석 달간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개돼온 양상은 희한했다. 러시아는 10만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했다. 그냥 그렇게 했다. 국지적 교전도 없었고 선전포고도 없었다. 이를 침공 의사로 간주한 건 미국이었다. 지난해 11월 “언제든 침공할 수 있다”는 정보를 나토에 전달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나토에 협상 조건이 담긴 문서를 보냈고, 미국은 경제제재를 예고했다. 유럽 정상들은 모스크바로 푸틴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푸틴이 그들과 잇따라 회담하는 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오히려 2월 16일로 날짜까지 못 박아 전쟁을 기정사실처럼 만들어버렸다. 러시아가 선제공격을 당하는 자작극을 벌여 침공할 거라는 시나리오까지 나돌았다.
3차 대전을 걱정할 만큼 일촉즉발로 치달은 과정, 총성 한 방 없이 세계 증시를 패닉에 빠뜨린 위기, 그 과정에서 납득하기 힘든 몇몇 대목을 이해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분석을 쏟아냈다. 그런 글에 많이 등장한 단어가 ‘게임’이었다. 치킨게임, 미치광이게임, 제로섬게임 등 게임이론의 여러 장르가 푸틴과 바이든의 수를 해석하는 데 동원됐다. 난데없이 병력을 옮기고, 민감한 정보를 흘리고, 포커판에서 블러핑하듯 허세를 부리고, 이도저도 아니게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KGB 스파이 출신의 러시아 대통령과 외교의 달인이라 불리는 미국 대통령.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를 체스판 삼아 거대한 게임을 벌이는 중이다.
처음엔 팃포탯게임 같았다. 상대방이 우호적이면 협조하고 배반하면 응징하는 눈에는 눈 대응을 뜻한다. 푸틴은 2008년 조지아 공습과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때 그렇게 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문제 삼기에 이번에도 그리 보였는데, 전격적이었던 당시와 달리 뻔히 보이게 했다. “나 전쟁할지 몰라” 외치듯 상대가 눈치 채지 않을 수 없도록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켰다. 한 달 뒤 그는 “나토의 위협이 느껴지면 군사행동도 고려하겠다”는 말을 툭 던졌다. 그러자 미국 언론에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글이 많아졌다. 닉슨은 자신이 핵전쟁도 불사할 비이성적 인물로 보이게 매드맨(Madman) 전략을 펴서 베트남전쟁을 끝내려 했다. 푸틴이 말한 군사행동은 세계대전을 촉발할 미친 짓이었다. 그가 닉슨처럼 미치광이게임을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바이든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한 터라 강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강 대 강으로 맞서는 치킨게임에 뛰어들었다. 반도체 금수조치를 비롯해 러시아 경제가 초토화될 만한 고강도 경제제재를 꺼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차관을 지원했고 인접국가에 병력도 파견했다. 미치광이게임은 “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하면서 협박하는 것이고, 치킨게임은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양보는 없어” 하며 맞붙는 것이다. 미치광이게임에선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커져야 유리하지만, 치킨게임에선 그것을 최소화해야 상대를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다. 바이든이 침공 예상일(2월 16일)과 개전 시나리오(자작극)를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그래서였다. 푸틴이 한쪽에서 병력 배치 범위를 넓히고 다른 쪽에선 외교와 대화를 하며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때, 바이든은 침공을 아예 기정사실화했다. “그래도 난 굽히지 않는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런 게임은 길어질수록 위험하다. 내가 던진 메시지를 상대가 오독할 확률이 커지고, 많은 전쟁이 그렇듯 우발적인 충돌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러시아가 병력 철수를 밝혀 고비를 넘기는 듯했는데, 미국은 오히려 증원됐다고 주장하며 믿지 않는다.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군과 친러반군의 교전설까지 불거져 긴장이 더해졌다.
게임의 승패는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현재로선 양쪽 다 소기의 목적에 근접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의지를 위축시켰고, 국제무대에서 강대국 대접을 톡톡히 받게 됐다. 바이든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은 채 러시아의 철수 제스처를 끌어냈다. 이런 중간 성적표처럼,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패하는 제로섬게임이 아닐 거란 분석도 있다. 어떻게 끝나든 미국과 러시아는 강대국의 명분과 실리를 챙길 테니, 패자는 결국 우크라이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체스판의 말이 된 약소국의 운명. 우리도 예전에 겪었던 일이고, 늘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