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에서 사흘간 이어진 대형 산불이 17일 오후 상당부분 진화됐다. 산불은 건조한 대기 속에 초속 최대 12m에 달하는 강한 바람을 타고 확산했다. 산림 피해면적은 축구장 560개 크기인 약 400㏊로 추정된다.
산림청과 경북도, 영덕군 등은 이날 헬기 40대와 인력 2700여명을 산불 현장에 투입했다.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에도 공중진화대, 산불특수진화대 등을 동원해 산불이 더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방화선을 구축했다.
산불이 확산하면서 영덕군 10개 마을 주민과 요양시설 입소자 등 995명이 마을회관 등으로 분산 대피했다. 이번 불은 지난 15일 새벽 4시쯤 영덕군 지품면 삼화리에서 첫 발생해 일단 진화됐지만, 밤사이 불이 되살아나면서 영덕읍 화천리와 화수리 일대로 크게 번졌다.
이번 산불 원인은 일단 농업용 반사필름으로 인한 전신주 스파크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영덕군과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는 산불이 발생한 삼화리 농로 주변 전신주에서 불에 탄 농업용 반사필름을 발견했다. 산불방지기술협회는 여러 정황으로 미뤄 반사필름이 전신주 피뢰침 쪽에 걸려 불꽃이 일면서 발화했다는 1차 감식 결과를 내놓았다.
농업용 반사필름은 과일이 햇볕을 골고루 받게 해 사과 등의 빛깔을 잘 내게 하고 생육과 품질을 높여주는 농자재다. 대중화되면서 영덕에서는 600여 과수 농가가 활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가연성인 비닐재질에 전기가 잘 통하는 알루미늄이 덧씌워져 있어 전신주에 걸리면 정전이나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순간최대풍속이 초속 12m에 이르는 강풍과 건조한 날씨도 산불을 키우는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경북 지역은 매년 이맘때쯤 ‘양간지풍(襄杆之風)’이 강하게 불어온다. 양간지풍은 봄철에 강원도 양양군과 고성군(간성) 사이에 발생하는 남서풍이다. 이 바람은 태백산맥 서쪽인 영서지역에서 발생한 상층의 따뜻한 공기와 하층의 차가운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어 동쪽 급경사면을 타고 영동지역으로 빠르게 내려온다. 2005년 발생한 고성군 산불과 2019년 4월 고성·속초 산불 등이 양간지풍으로 산불이 번진 사례로 손꼽힌다.
경북도소방본부 관계자는 “양간지풍은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푄 현상을 일으키고 양양과 간성 사이의 골짜기 지역을 지나며 지형적 영향으로 속도가 빨라지면서 산불 발생 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을 가속화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북 동해안지역은 수일째 건조특보가 발령되면서 메마른 날씨가 이어져 대형 산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경북 지역에선 올들어 30여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했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브리핑을 통해 “정확한 구역은 다시 봐야겠지만 산불이 지나간 지역, 즉 산불 영향구역은 현재 약 400㏊로 보인다”며 “진화가 길어지고 산불구역이 확대됐다. 정확한 면적은 진화 후 1~2개월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영덕=안창한 기자 chang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