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부자처럼 ‘교정선교’ 대를 잇다

입력 2022-02-18 03:00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채한욱 목사. 채 목사는 “교정선교는 감리교 신학의 뿌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신석현 인턴기자

감리교단의 교정선교를 대표하는 부자(父子) 목회자를 만나기로 한 날짜는 지난달 4일이었다. 한데 인터뷰 전날 이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뷰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황당한 건 이튿날 전해진 부고였다. 사인(死因)은 급성 패혈증과 다발성 장기손상. 갑작스럽게 엄청난 슬픔을 짊어지게 된 아들은 아버지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좀 정리되면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연초부터 황망한 일을 겪은 사람은 감리교 교정선교회(회장 이기우 목사) 사무국장인 채한욱(55) 목사다. 그는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고(故) 채기화 목사의 외아들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현재 교정선교회 실무를 도맡고 있다.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채 목사는 서울 강남의 한 대형교회에서 시무하던 아버지가 교정선교에 투신한 계기부터 들려줬는데, 이 이야기엔 한때 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삶을 살았던 자신의 굴곡진 삶이 담겨 있었다.

젊은 시절 채 목사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삶을 살았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냈고, 폭력 조직에 가담해 범죄를 저질렀으며, 결국엔 교도소에 수감됐다. 10년 넘게 교도소 생활을 했는데 처음엔 이곳에서도 자주 문제를 일으켜 12차례나 교도소를 옮겨야 했다. 세상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3대 독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경이 얼마나 무참했을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면회를 왔다가 교도소 간부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이곳에 있는 다른 수감자도 당신의 아들이라 생각하고 교정선교에 관심을 가져 달라.’ 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는 일반 목회를 그만두시고 교정선교에 뛰어들었어요. 1992년 목회자 30명 정도를 모아 단체를 꾸렸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교정선교회인 거죠.”

사진은 채한욱 목사의 아버지인 고(故) 채기화 목사로 고인은 2016년 법무부로부터 제34회 한국교정대상을 받기도 했다. 채한욱 목사 제공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채 목사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악질 수형자’의 집합소로 악명 높았던 청송제2교도소(현 경북북부교도소)에서 겪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구타가 너무 심한 곳이었어요. 한 번은 너무 맞아서 갈비뼈가 부러졌었죠.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때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그렇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채 목사는 수감 생활을 하던 2001년 국내 수형자 최초로 법학사를 취득했다. 출소 이후엔 협성대에서 신학 석사 박사 과정을 밟았다. 목사 안수도 받았다. 아버지가 몸담은 교정선교회에서 일한 건 2006년부터다. 채 목사는 교정선교가 갖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이야기를 꺼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존 웨슬리의 아버지인 새뮤얼 웨슬리는 ‘교도소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교정선교에 매진한 목회자였다. 존 웨슬리로서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영국 옥스퍼드대에 진학해서는 ‘신성회(Holy Club)’라는 단체를 만들어 교정선교에 몰두했다. 이처럼 감리교 역사에는 교정선교의 무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아울러 웨슬리 부자(父子)의 삶은 채 목사 부자가 걸었던 길과도 절묘하게 포개진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교회가 왜 범죄자를 섬겨야 하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현재 한국의 재범률은 67.8%(2020년 법무부 통계)에 달합니다. 10명이 출소하면 그중 7명이 다시 범죄를 저질러요. 이들이 교화되지 않으면 우리 주변 이웃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범죄자를 바꿔 놓는 방법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교정선교회에서 ‘관리’하는 수형자들의 재범률은 1%밖에 안 돼요.”

교정선교회의 활동 무대는 전국 54개 교도소다. 교정선교회 회원들은 지난 30년간 이들 교도소를 돌아다니며 예배를 드리고 세례식을 열고 수형자에게 영치금이나 의료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현재 이 단체의 활동은 위축된 상태다. 후원금 규모는 절반 가까이 줄었고 수형자 대면 행사를 여는 것도 여의치 않다. 채 목사는 교정선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거듭 호소했다.

채 목사는 인터뷰를 앞두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사역에 큰 도움이 됐던 성경 구절들을 보내오기도 했었다. 이들 구절엔 그의 기구한 삶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시편 57장 7~8절 말씀이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