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후원하고 있는 철학학문공동체가 있다. 그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철학 관련 문헌을 번역 출판해 후원자들에게 제공한다. 또한 원하는 사람들은 양질의 스터디에 참여해 철학이나 영어를 공부할 수도 있다. 경제적인 문제로 철학을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사업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초창기부터 후원을 해오고 있지만 나는 거기서 보내준 도서를 제대로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책들은 대체로 얇은 편이지만 매우 난해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해본 적도 없다. 참여해봤자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지레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매달 그곳에 후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내게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나는 세상에 그런 집단이 존재하는 것이 좋다. 철학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라기보다 철학을 대하는 그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 좋다. 오로지 그 마음만을 위해 한 달에 2만원씩 지출하는 것이 조금도 아쉽거나 아깝지 않다.
올해 초 거기서 만든 일력을 받았다. 한 장 한 장 뜯을 때마다 날짜와 요일 외에도 생각해볼 만한 질문들이 적혀 있다. ‘장애(disability)와 무능력(inability)은 어떤 점에서 구별되는가?’처럼 묵직한 질문도 있다. 반면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갈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나처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확신할 수 없는데 혹시 나 빼고 나머지는 무늬만 사람인 좀비가 아닐까?’ 하고 묻는 익살스러운 질문도 있다. 올해 들어 매일 이런 질문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이제야 내가 이 공동체가 제공하는 즐거움에 가까스로 합류한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무언가를 우연히 또는 운 좋게 아는 일이 가능한가?’ 나는 그렇다고 믿으면서, 예술은 어느 정도 늘 그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침밥을 준비한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