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국내에서는 지금과 달리 팝의 인기가 높았다. 80년대 초중반 가장 독보적인 가수는 마이클 잭슨이었다. 많은 이들이 레코드점 등에서 잭슨의 ‘비트잇’, ‘빌리진’ 등이 흘러나오면 길을 가다 멈춰 노래를 듣곤 했다. 그의 춤 ‘문워크’를 따라 몸을 흔든 청소년들이 부지기수였다. 같은 시기 우리 음악은 조용필, 이용, 이문세 등이 대중가요를 이끈 가운데 대학가 민중가요도 널리 알려졌다. 민중가요는 전투적인 풍이 주류였지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가락의 곡도 적잖았다. 대표적인 게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마른 잎 다시 살아나’다. 곡을 만든 이가 연세대 84학번 안치환이다.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멤버인 안치환은 90년대 대중가요계를 노크했다. 히트작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이때 나왔다. 운동권과 일반 대중에게 모두 사랑받은 흔치 않은 가수다.
안치환이 최근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란 곡을 냈다. “저항가요에 있어 풍자와 해학의 가치는 최고의 덕목”이라며 발매 이유를 소개했다. 동세대 레전드 잭슨의 삶을 통해 한국의 현실을 풍자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내용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에 대한 ‘얼평’이었다. 김씨의 허위 이력을 꼬집었으면 또 모른다. 게다가 김씨의 성형을 화상과 백반증으로 고통을 겪으며 성형 루머에 시달린 잭슨에 빗댔다. 혐오와 조롱이며 고인인 잭슨까지 모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여당 관계자가 이 노래를 두둔하자 당 수뇌부가 ‘인사조치’를 경고했다. 진보 진영조차 안치환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부동산 문제까지 불거졌다. 불법 건축물을 세웠다 구청에 적발됐다. 본인 소유 건물 4개, 40여억원 대출, 자녀 명의 이용도 알려졌다. 앞에서는 사회 정의를 외치고 뒤에서는 부동산 탐욕을 부리는 몇몇 586 집권세력의 모습과 묘하게 겹친다. 13년 전 사망한 잭슨은 하늘의 별이 돼 아직도 우리를 비추는데 80년대 민중가요의 기린아는 이렇게 추락했다. 그의 팬으로서 씁쓸할 따름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