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가 되면 기자들은 각자 담당하게 될 후보를 맡아 취재하는 ‘마크맨’이 된다. 선거 유세 등 각종 일정을 따라다니며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워낙 많은 기자들이 붙어 후보를 가까이서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지만,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후보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한 사람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마크맨이 됐다. 대선 출마 선언 이후 기자실을 돌며 인사를 하던 날, 여의도에 입성한 윤석열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전 출입처가 사회부 법조팀이었는데,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그를 정치부에서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이다. 서초동에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검찰의 수장이 정치 신인이 돼 어색한 모습으로 인사말을 건네는 모습이 익숙지 않았다.
그렇게 약 7개월이 흘렀다. 그는 제1야당 대선 후보로 대규모 청중 앞에서 제법 능숙하게 연설을 한다.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 “지역경제를 번영시키겠다” “배은망덕한 정권을 심판하자” 등 정치인의 언어로 지지를 호소한다. 지지자들의 환호에 만세로 화답하고 ‘어퍼컷’을 날리기도 하는 등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윤석열이란 인물을 지켜보면서 ‘기세’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객관적 이력만 봐도 그렇다.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하고 좌천돼 몇 년간 한직을 떠돌다 적폐청산 수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로 문재인정부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곤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돼 정권심판론을 외치고 있다. 정치 신인들이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가 줄줄이 중도 하차했던 역사들을 떠올려보면 그가 대선을 완주하고 있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주관적 평가를 해봐도 그렇다. 정치 신인이지만 기세로 따지자면 여의도에서 내로라하는 중견 정치인들 못지않은 듯하다. 첫 TV토론회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RE100’으로 공격 카드를 내밀었을 때도 당당하게 “그게 뭐죠?”라고 답했다. 토론회가 끝난 다음에는 “모르는 건 알려주면서 토론을 하는 게 예의”라고 오히려 역공을 가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이미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그의 만만찮은 기세를 엿볼 기회는 있었다. 2020년 대검찰청 국정감사 당시 민주당은 수사 축소, 검언 유착 등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박범계 의원이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고 몰아붙이자 당시 윤 검찰총장은 “선택적 의심 아니냐. 과거에는 저에 대해 안 그러시지 않았느냐”며 받아쳤다.
누군가는 그의 이런 모습이 거칠다고 싫어할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당당하다고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오명이 따라붙지만 어쨌든 윤 후보는 대선을 3주 채 남기지 않은 현재,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가 최종적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가 승리를 거머쥐는지도 중요한 일이지만, 대선 이후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더욱 관심이 간다. 여야 후보 모두 호불호가 극명히 나뉘는 데다 극단적 진영 싸움이 예상되는 탓이다. 과연 정권 초기 ‘허니문’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며칠 전 윤 후보의 유세 일정을 취재하러 갔다가 문득 우려 하나가 생겼다. 민주당에 대한 윤 후보의 인식이 드러나는 발언들 때문이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후 첫 대규모 대중 연설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이번 대선에서는 청중 연설이 많지 않았다. 대규모 인파가 후보 이름을 연호하는 유세장의 뜨거운 열기는 후보를 흥분하게 만든다. 윤 후보도 그런 듯 보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민주당 정권은 정상이 아니다” “이 정권 전체가 공범” 등 거침없는 발언들이 나왔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문재인정부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긴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총선에서 170석 거대 의석을 얻은 공당이고,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30%대의 유권자들도 존재한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우리 정치사에 기록할만한 일이 될 것이다. 그의 거침없는 기세가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통합의 정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이가현 정치부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