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화폐의 변천, 헌금의 변천

입력 2022-02-19 04:07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돈은 문명의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오래된 유물”이라고 정의했다. “만약 기원을 따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도 했다. 케인스의 말대로 돈은 조건을 맞춰가며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다. 조건은 이렇다. 어떤 재화와도 교환할 수 있어야 하고, 가치가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성을 지녀야 한다. 쉽게 구분해야 하고 내구성도 있어야 한다. 운반이 쉬워야 하며 나누거나 합쳐도 그 질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 돈을 관리할 최종 책임자도 있어야 한다. 조건을 관통하는 단어는 ‘신뢰’다. 특히 통화 발행국의 신뢰에 따라 돈의 가치는 달리 매겨졌다.

홍콩 여행을 마치고 마카오로 향하던 때의 일이다. 환전소에 가서 쓰고 남은 홍콩달러를 마카오 돈인 파타카(MOP)로 바꾸려는데 직원이 “홍콩으로 돌아오냐”고 물었다. 홍콩달러는 마카오에서 쓸 수 있는데 마카오 돈은 홍콩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마카오 돈은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 달러가 국제외환시장에서 금융거래를 하거나 국제결제의 중심이 되는 기축통화가 된 데도 미국이라는 뒷배가 있어서다.

그 돈이 사라지고 있다. 통장에 돈이 있어도 실체를 볼 일은 거의 없다. 카드로 결제하거나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하면 그만이다.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도 생겨났다. 캐시리스 시대에 교회도 현금으로만 내던 헌금 방식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구약의 비둘기나 양과 같은 헌물이 신약에 와서 현금으로 바뀐 것처럼 지금은 또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새로운 헌금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일부 교회가 현금과 함께 모바일뱅킹이나 신용카드로 헌금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부정적 시선만 경험했다.

놀랍게도 한국교회가 헌금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 건 코로나19 때문이다. 비대면 시대에 영상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는 계좌번호를 자막으로 넣었다. 헌금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 코인이나 대체불가능토큰(NFT)이 현금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오면서다.

IT 기업인 이포넷은 NFT로 헌금하고 기부하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MZ세대가 헌금과 기부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NGO들의 걱정을 들은 뒤부터다. 알고 보니 교회가 현금으로 헌금하는 방식을 고수할 때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MZ세대는 헌금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영국 성공회의 존 프레스턴 목사는 언론에 “젊은 층은 더 이상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 만큼 카드 결제 시스템은 모든 연령층이 자유롭게 봉헌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 전날 저녁이면 헌금할 지폐를 정성스럽게 다림질한다던 한 성도의 이야기는 마음에 걸린다. 그는 일주일 동안 모은 돈을 다림질해서 봉투에 담은 뒤 헌금함에 넣는 이 모든 과정을 헌금이라 했다. 그 과정이 사라지면 헌금이 아니라고도 했다.

새로운 헌금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됐다면 미국 남침례교 카사스교회의 로저 배리어 원로목사가 제시한 디모데전서 6장 10절 말씀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돈을 대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교인에게 기독교 미디어 사이트인 ‘크로스워크’를 통해 “성경에선 일만 악의 뿌리는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했다”고 전했다. 돈이 있고 없고 문제보다 중요한 건 돈에 대한 태도라는 설명도 더했다. 헌금 역시 액수나 방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돌려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4차 산업혁명과 교회’라는 논문을 쓴 임우성 압구정예수교회 목사도 “헌금에 대한 진리가 변해선 안 된다. 젊은 기독교인에게 모바일뱅킹이나 카드 결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방식의 헌금이 불편한 이들에게 질문을 건네본다. 비둘기와 양을 헌물로 드리던 구약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헌금 봉투를 어떻게 볼까.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