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일로 예상된 16일(현지시간) 크림반도 등에서 군사훈련을 종료하고 병력을 철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병력 축소 발표에 의구심을 표명했다. 다른 서방 동맹들도 대체로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의 병력 감축 움직임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평가를 미뤘다. 군 전문가들은 고도의 기만술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백악관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일부 군대를 철수한다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았다”며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은 여전히 높고,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단호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분석가들은 여전히 그들이 위협적 배치 상태에 있음을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러시아군 15만명이 배치돼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 명분 없는 전쟁으로 압도적인 국제적 규탄을 받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해로 판명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침공이 벌어지면 즉각 경제적 제재를 가하고, 러시아 천연가스 수송관 사업인 ‘노르트스트림2’를 금지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보도문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병합한)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남부군관구 소속 부대들이 철로를 이용해 원주둔지로 복귀하고 있다”면서 군사장비들을 실은 열차가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함께 공개했다.
그러나 서방 동맹은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며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동맹국들은 긴장 완화의 조짐을 보지 못했다”며 “러시아는 이전에도 장비를 두고 군대만 이동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러시아는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인근에 기지를 구축한 뒤 대규모 군사훈련을 했고 장비를 놔둔 채 철수했다. 러시아는 이런 전술을 통해 지난해 10월 신속하게 해당 지역에서 병력을 증강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철수했다고 공개한 부대는 우크라이나 인근에 주둔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기지로 철수하더라도 우크라이나와 여전히 가까워 언제든 이른 시일 안에 재배치가 가능한 상태다.
뉴욕타임스(NYT)는 “군사 분석가들은 병력 감축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엔 너무 이르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또 “위성 이미지를 보면 러시아 중부와 동부 부대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공격 대형으로 배치됐다”며 “러시아는 지난주 우크라이나 인근에 다수의 공격 헬리콥터와 전투기를 배치했는데, 이는 군사력 증강이 계속되고 있다는 표시”라고 군사 전문가를 인용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사이버보안센터는 이날 국방부 웹사이트와 프리바트은행, 오샤드은행이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러시아가 외교적 대화에 열려 있다고 했지만 정보 당국이 파악한 바로는 상황이 고무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에서 야전병원을 세우고 있다. 침공을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엇갈린 메시지를 내놓으며 서방 지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