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소환한 메멘토 모리… 죽음에서 삶을 배우다

입력 2022-02-19 03:00
게티이미지뱅크

온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의 공포가 엄습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끔찍한 일상이 됐다.
구순 문턱에서 암 투병 중인
이어령(89) 전 문화부 장관은
최근 펴낸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열림원) 대화록에서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코로나의 역설, 죽음의 역설’로 설명한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안에 갇혀 있다고 여긴 사자와 호랑이, 즉 죽음이 길거리로 뛰어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죽음의 공포, 굶주린 맹수의 습격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온 마을, 온 도시, 온 인류가 깨닫기 시작한 것이란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성직자나 철학자의 가르침보다 더 강렬하게, 이 죽음이란 무시무시한 사자를, 저 괴물을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보여주고 만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가 발 딛고 섰던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원폭으로도 무너지지 않던 문명·문화가, 조그마한 바이러스한테 허망하게 무너진 꼴이라고 풀이했다.

“인류가 절대 선을, 초월적인 것을 못 느꼈는데 이 포스트 코로나로 인해 경험을 떠난 초월적 상태로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저 아프리카든, 서양이든, 동양이든, 인류가 다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로서 코로나19를 똑같이 경험하게 됐다는 거지요. 놀라운 역설입니다.”

우리는 여태껏 죽지 않는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왔는데, 비로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이 전 장관은 강조했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죽음을 기억하는 메멘토 모리를 다시 깨닫게 됐다고 했다.

‘죽음에서 삶을 배우다’(두란노)의 저자 황명환(64) 수서교회 목사는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된다고 했다. 죽음을 바로 알면 인생이 더욱 의미가 있고 보석처럼 빛나기 때문이다. 황 목사는 ‘죽음 바로 알기’라는 강의를 통해 “죽음에 대한 대답이 그 사람의 인생관이며, 삶의 목적이고, 철학이자 신앙이다”면서 “그러므로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이 대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철학과 종교가 존재하는가? 황 목사는 바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도 철학의 목적은 죽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철학이 종교와 다른 것은, 종교가 신의 힘을 빌려서 죽음을 극복하려는 것이라면 철학은 인간의 힘으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은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인간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무신론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고 부활하셔서 죽음과 그 이후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죽음 이해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예외는 없으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명한 명제이다. 실제로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알고 날마다 준비하셨다. 왜 그렇게 하신 것일까. 죽음이 정리되면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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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수천 년 내려오던 우리의 장례 문화를 뿌리째 바꿔놓고 있다. 장례식장은 민망하게 여겨질 정도로 한산하다. 이제 코로나가 종식돼도 예전과 같은 분위기로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장례식은 단출해졌다. 차제에 장례도 친환경 장례식으로 전환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사망자 장례 때는 ‘안전 보장’과 ‘온전한 추모’라는 새로운 과제도 등장했다. ‘발인 후 화장, 매장’이라는 관습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수의, 염습, 관 등의 준비도 없는 ‘선 화장 후 장례’ 방식도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

기독교 장례문화 운동을 벌여온 투헤븐선교회 대표 김헌수(67) 목사(동탄 꿈너머꿈교회)는 “그동안 기독교 장례문화 운동을 벌여 한국교회가 이제는 기독교 장례를 해야 한다는 데 크게 공감하고 실제 기독교 장례를 원하고 있다”며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무늬만 기독교 장례’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개탄했다.

김 목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죽음 뒤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시신을 꽁꽁 묶는다든지, 여기저기 막는다든지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과 배치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몸이 다시 산다고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며 “그러나 장례절차를 보면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은 없고 죽음의 장례로 모든 절차와 방법이 진행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함박웃음, 어머니 시집가던 날’ ‘왕 할아버지 안녕’ ‘폴 세잔의 사과’ ‘잘 자라 내 아가!’ ‘나들이’. 언뜻 보기에 영화나 드라마 제목처럼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가정 사역단체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64) 목사가 치른 장례의 주제들이다. 그는 값비싼 수의(壽衣) 대신 평상복 입기, 종이 관(棺) 쓰기, 추모단을 생화 화분으로 꾸미기, 염습을 사후 메이크업으로 바꾸기, 나아가 ‘상주(喪主)는 왜 남자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의 장례문화 속에 깊이 파고든 성차별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잘못된 장례문화 개선 운동을 펼치고 있는 송 목사의 유쾌한 반란은 거침이 없다. 지난해 2월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정복수(99)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치러진 장례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늘 그렇듯 조문객들은 국화로 장식된 영정 앞에 국화꽃을 헌화했다. 이에 대해 송 목사는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꽃으로 헌화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렇게 의미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치르는 장례 문화가 한 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세상을 떠난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도, 마지막 광복군으로 불린 김우전 전 광복회장 장례도 마찬가지였다고 송 목사는 전했다.

송 목사는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의 잔재물이라고 설명한다. 1934년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지배를 위해 우리 전통 상복인 굴건 대신 두루마기에 두건을 입게 하고, 양복을 입을 때는 왼팔에 상주, 가족, 문상객을 구분하기 위해 검은 완장을 차게 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은 표면적으로는 의례개선을 내세웠지만, 실제는 조선의 전통 의례를 해체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과 긍지를 파괴하는 민족말살정책이었다는 얘기다. 이 총독부 의례준칙은 광복 후 ‘가정의례준칙’으로 이어지면서 현재의 장례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 송 목사의 지적이다.

“유족이 입는 옷이 상복(喪服)인데 죄인들이 입던 삼베로 만들었어요.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 죄인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고인에게 삼베옷을 입히고 자식들은 죄다 양복을 입어요. 완전히 거꾸로 된 것 아닌가요? 더욱이 ‘마지막 며칠, 효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란 장의업자들 마케팅에 놀아나 수백만 원짜리 삼베옷을 입히는데 실제 원가는 몇만 원밖에 안 하는 데다 대부분 중국산입니다. 화장률이 90%가 넘기 때문에 대부분 2, 3일 후에 태워질 옷인데요. 이런 게 코미디가 아니면 뭐가 코미디일까요.”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