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잘 듣고 분별하라

입력 2022-02-18 03:05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귀 없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고, 무슨 말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원인을 마음의 완악함으로 지적하셨습니다.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면 악해지고, 들려도 듣지 못하게 되고 듣는 신경까지 둔해져 이해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듣는 기능이 둔해져서 대충대충 듣다 보니 앞뒤의 말씀을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를 합니다.

사람의 귀는 얼굴 양쪽에 두 개 있습니다. 몸에 둘씩 붙어있는 기관은 그만큼 부지런하고 신중하게 활동하라고 부여된 곳입니다. 눈이 둘 있는 것은 잘 보고 정확하게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손과 발이 둘씩 있는 것도 부지런하게 움직이기 위함입니다. 반면 하나밖에 없는 기관은 조심하고 절제하라는 기능이 부여된 곳입니다. 입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두 귀로 잘 듣고 두 눈으로 잘 보더라도 말은 절반만 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한 곳이 무려 11번이나 나옵니다. 특히 마태복음 13장 16절에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잘 듣고 잘 깨닫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잘 듣고 구별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한다면 첫째, 편견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일궈서 부드럽게 해야 할 것입니다. 편견을 버리고 수용성 있고 부드러운 마음의 밭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남의 말을 들을 때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쉽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애매하거나 서툰 표현 때문에 생기는 오해도 있지만, 잘 알아듣지 못해 생기는 오해가 오히려 더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 마음을 넉넉히 갖고 선한 방향으로 듣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상대방을 입장에 서서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듣고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특히 오늘 말씀에서 듣는 자의 이러한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종종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속이 좁고, 더 답답할 때가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으로 산다는 것이 속 좁게 사는 것이 아님에도 이런 말을 듣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양식대로 살고 있지 않고 미움으로 가득해 용서를 못 하며 손해 보기 싫어서 양보하지 않고, 편견으로 인해 완악해져 귀가 둔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잘 듣는 가운데 진위를 구분해 분별력을 갖추게 되면 선한 지혜가 작동합니다. 선한 방향으로 귀를 기울이다. 보면 더욱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매일매일의 구체적인 삶도 그렇게 변화되어 갑니다. 예수님이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듣고 귀를 열어 편견에서 벗어나 수용하는 마음의 밭을 일궈내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창호 목사(부산 장대현교회)

◇임창호 목사는 고신대와 동대학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히로시마대학교에서 교육철학으로 박사(Ph.D.)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휴스턴 한인장로교회 담임, 고신대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현재 탈북민 전문교회인 장대현교회 담임, 부산 강서구 신호동 소재 탈북학생을 위한 대안학교인 장대현학교 교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