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 여성 또 피살… ‘잠정조치’ 사각지대서 참극

입력 2022-02-16 00:04 수정 2022-02-16 00:04
국민DB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피살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경찰은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 위험도를 ‘심각’ 단계로 분류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유치장 입감 등의 잠정조치는 하지 않았다. 결국 구속영장 반려로 풀려난 가해자의 보복범행을 차단할 장치는 없었다. 지난해 11월 신변보호 피해자 사망 사건 후 경찰이 가해자 분리 원칙을 강조했음에도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참극이 되풀이된 것이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 14일 오후 10시13분쯤 구로구의 한 술집에서 전 여자친구인 40대 여성 A씨를 살해한 뒤 달아났던 피의자 조모(56)씨가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15일 밝혔다. A씨는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약 3분 만에 사건 현장에 도착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

앞서 A씨는 조씨를 지난 11일 폭행 및 특수협박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피해자를 안전조치 대상으로 등록하고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조씨는 고소된 당일에도 A씨 가게를 찾아가 난동을 부리다 업무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관할인 서울 구로경찰서는 조씨의 스토킹 혐의 등 여죄를 추가로 수사한 뒤 12일 새벽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스토킹처벌법상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잠정조치는 신청하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서울남부지검은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반려했다. 조씨는 바로 석방됐고, 그 이틀 뒤 피해자는 참변을 당했다.

경찰도 어느 정도 신변보호 조치를 취하긴 했다. 스토킹처벌법상 긴급응급조치 1호(피해자 및 주거지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와 2호(전화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적용했다.

그러나 가해자 격리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스토킹 사건에서 가장 높은 대응 단계인 ‘심각’으로 분류했다. 지난해 12월 서울경찰청이 내놓은 ‘스토킹 범죄 현장대응력 강화’ 대책에 따른 것이다. 모든 스토킹 사건을 ‘주의’ ‘위기’ ‘심각’ 3단계로 분류하고, 심각 단계에선 구속영장 신청과 함께 법원에 잠정조치 1~4호를 신청토록 하는 내용이다. 특히 잠정조치 4호는 유치장 입감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분리하도록 규정했다.

해당 대책은 또 피의자 석방시 잠정조치 4호 집행 전까지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당부도 했다. 임시숙소 입소 등 피해자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선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이후 잠정조치도 신청하려 했는데,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스토킹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보완 수사를 거쳐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할 때 잠정조치를 함께 신청할 예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적극적으로 경찰이 스토킹 혐의까지 적용했고, 특수협박 등의 혐의가 명확해 구속사유가 충분하다고 봤지만 검찰에서 영장 신청을 반려하면서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판 전성필 이형민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