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늘리겠다면서도… 대선주자들 ‘묻지마 감세’ 경쟁

입력 2022-02-1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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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선주자들이 소상공인 지원 강화, 복지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발표하는 동시에 감세 공약을 들고 나왔다. 재정정책의 기본 원칙인 ‘양입제출(量入制出·수입에 맞춰 지출을 정하는 방식)’에 크게 어긋나는 ‘묻지마’ 공약이라는 지적이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바탕으로 제출된 법안들의 국회 예산정책처 비용 추계 보고서에도 “의안의 내용이 선언적·권고적인 형식으로 규정되는 등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렵다”고 돼 있어 실제 이런 감세 공약이 재정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대선 공약에 유권자 혼란만 커지고 있다.

李 “월세 세액공제율 인상” 공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월세 세액공제율 인상, 근로소득공제 금액 상향, 청년 취업자 연 100만원 특별소득공제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우선 이 후보는 월세 세액공제율을 현행보다 5%포인트 올려 월세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월세 세액공제율을 높이면 연평균 세수 895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월세 세액공제를 현행보다 5%포인트씩 올리면 5년간 총 4474억원의 세금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월세 세액공제 확대 공약은 그나마 세금이 얼마나 줄어들지 추산할 수 있지만, 다른 공약들은 세금 감소 폭을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3년부터 과세하는 가상자산 공제 한도를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높이는 공약에 대해 예정처는 추계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직 세금을 걷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제 한도를 높이면 세수가 얼마나 줄어들지 현재로서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또 20~30대 청년 취업자를 위해 연 100만원의 특별소득공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급여분부터 근로소득공제 금액을 상향하고, 현행 1인당 15만원인 자녀 세액공제를 2배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도 밝혔다. 소득세 공제를 늘려 실제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중소기업 청년 소득세 감면 정책이 시행 중이라 중복 수혜라는 지적도 나온다.


尹 “소득세 부담 연 3조원 이상 줄일 것”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5000만원 이하 퇴직금에 대한 퇴직소득세 감면, 근로소득세 인적공제액 200만원으로 인상, 소득공제 한도 인상 등을 들고 나왔다. 10년 동안 근무한 직장을 퇴직하면서 퇴직금 5000만원을 받았다면 약 92만원의 퇴직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이 세금을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5000만원 이하 퇴직소득세 규모는 약 2400억원이다.

직장인 세금 부담 완화 정책도 내놨다. 윤 후보는 “봉급생활자들의 소득세 부담을 연 3조원 이상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부양가족 요건을 현행 만 20세 이하에서 만 25세 이하로 올리고, 부양가족에게 소득이 있을 때 인적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부양가족 연 소득 기준도 100만원 이하에서 200만원 이하로 조정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부양가족 요건을 완화하면 대학생 자녀 1명을 둔 연봉 6000만원인 외벌이 가장은 세금을 지금보다 50만원쯤 더 돌려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근로소득세 인적공제에서 본인 기본공제액은 현행 1인당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인상하고, 신용·직불 카드 사용액의 소득공제 한도 역시 50% 인상하겠다고도 했다. 연말정산 때 돌려받는 세금을 늘려주겠다는 구상이다.

반려동물 치료비를 근로소득에서 공제해주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예정처는 이 공약을 바탕으로 낸 법안에 대해 비용 추계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현재 반려동물 의료비 지출액 규모가 얼마인지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韓 소득세 부담률, OECD 평균의 절반

양당 후보는 주요 복지 공약의 재원 조달 방안으로 ‘국비 활용’ ‘세입 증대 예상분 활용’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감세 공약으로 줄어드는 세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다. 특히 소득세 세액공제 공약은 소득세 부담이 현저히 낮은 한국 실정과 맞지 않을뿐더러 예외 규정만 늘리는 식이라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부담률은 2019년 기준 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0%과 비교하면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지난해 걷힌 소득세는 114조1123억원으로, 총 국세 수입 344조782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전체 세제 개편에 대한 논의 없이 소득세 공제만 늘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정한 경우에 한해 세금을 깎아주기보다는 세율이나 과세표준 기준 등을 개편해 전반적인 세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15일 “소득세는 복지 재원의 중요한 원천인데, 소득세는 깎으면서 복지를 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부양가족이 늘어나는 데 대한 인적공제를 제외하고는 다른 공제 항목들은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경연 경제정책팀장은 “공제를 확대하기보다는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세제를 손봐야 한다”며 “소득세 예외를 많이 두는 것은 세수 예측을 어렵게 만들고, 행정 비용도 늘어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