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 유사시 원자재 수급 불안 따른 타격 불가피

입력 2022-02-16 04:05
지난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북서부 레닌그라드에서 기갑부대 탱크가 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으면서 우리 기업들도 초비상이 걸렸다. 국제유가 상승, 반도체 및 배터리 소재 공급 불안정 등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의 활동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의 석유, 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길 시 유가를 포함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세계 석유 수출의 11% 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원유 생산국이며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특히 유럽의 경우 지리적 특성상 역내 천연가스 공급의 3분의 1 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지정학적 불안정성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를 웃돌면서 2014년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한 상태다. 1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2.36달러(2.5%) 오른 배럴당 95.46달러를 기록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시 국제유가가 12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제 에너지시장 불안, 가스대체 석유 수요 증가로 유가 폭등이 예상된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군사 개입, 주요 7개국(G7)의 러시아에 대한 고강도 금융 및 경제 제재가 이뤄질 시 두바이유가 배럴당 최대 125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경우 국내 산업계에도 여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원료비 지출 부담이 늘어날 수 있으며, 석유화학업계도 원재료 상승으로 인한 손실을 겪을 수 있다. 정유업계도 유가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다. 유가 급등 시 단기적으로는 재고 관련 이익이 커지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배터리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산업에서는 원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 원료인 네온의 경우 지난해 우리나라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입 비중은 23%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세계 광물 시장에서 러시아의 비중은 니켈 49%, 알루미늄 26% 등에 달한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현재 상당수 장기 공급계약을 맺고 있어 영향이 적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예의 주시한다는 분위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가전, 자동차 등 현지 공장이나 법인을 운영하는 국내 기업들은 주재원을 철수시키는 등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생산 중이다. 현대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도 법인을 두고 있다. 다만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은 대부분 인근 국가에 판매하는 용도여서 개별 공장의 가동 차질이 가져올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밀, 옥수수 등 국제 곡물자원 수출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탓에 식음료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향후 미·유럽 등 서방이 경제제재나 수출 제한 등을 가할 경우 국내 기업들이 공급망 혼란 등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