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방송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2’. 드디어 번호 대신 자기 이름을 내건 참가자 톱10이 가려졌다. 마지막 관문 패자부활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난 7호와 34호는 독보적 목소리를 가진 스물두 살 김소연과 40대 ‘센언니’ 나겸이었다. 이번 시즌에선 이들 외에도 20대 싱어송라이터 서기, 로커 윤성, 보컬트레이너 신유미까지 다양한 나이와 장르의 여가수들이 무대가 고팠던 나름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다채롭게 들려주고 있다.
비단 이 프로뿐 아니라 요즘 한국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여성 서사의 분출’이라고 부를 만하다.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로 풀어낸 이야기가 곳곳에서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무대 위에 가려져 있던 댄서들에게 조명을 비춘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이들을 모르면 대화에 낄 수 없다.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은 30대 초반 여주인공들을 통해 사회 초년 여성들의 삶과 고민을 들려줬고, ‘옷소매 붉은 끝동’은 나 자신을 잃게 될까 봐 왕의 사랑 고백을 거절하는 주체적 궁녀상을 그려냈다. 이미 출판계에선 김초엽 정세랑 최은영 강화길 등 2030 여성 작가가 대세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2022년 대한민국에서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풍경은 유독 다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선거 캠페인에선 여성이 사라졌다. 특히 2030 여성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나 싶을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할 만한 눈에 띄는 인물도, 기대해볼 만한 공약도, 이를 뒷받침할 기구도 보이지 않는다. 젠더 감수성이 유난히 부족한 후보들과 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들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차피 2030 남성과 여성의 표를 동시에 얻기는 힘들다 판단하고 일찌감치 남성표를 공략하는 쪽을 택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앞세웠고 군 병사 월급 200만원 보장 등도 약속했다. 청년 정책 중 여성에 해당하는 공약은 안 보인다. 이준석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20대 여성이 그들만의 어젠다를 형성하는 데 뒤처지고 있다”는 말로, 20대 여성 정책이 부재한 이유를 스스로 정치세력화하지 못한 20대 여성 탓으로 돌리는 듯했다. 윤석열 후보는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얘기다”라는 발언을 거침없이 내놨다.
국민의힘 못지않게 이대남에 공들여온 민주당은 박빙 선거 판세가 계속되자 뒤늦게 2030 여성 공략에 나섰다. 지난달 27일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 ‘텔레그램 n번방’ 문제를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씨를 선거대책위 내 디지털성범죄근절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이탄희 의원 등 민주당 의원 20명은 14일 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성범죄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사과했다. 박원순 전 시장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고, 당시 ‘피해호소인’ 등의 표현으로 2차 가해 논란에 휘말렸던 남인순 진선미 고민정 의원 등은 함께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대선 기간은 표 때문에라도 정치인들이 그간 소외됐던 계층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변하겠다고 약속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후보들이 표 준다는 사람들만 쫓아다니느라 꼭 들어야 할 소리를 찾아 듣지 않는다. 젠더 이슈는 분명 과거와 달리 양상도 복잡하고 해결하기도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됐다. 이럴수록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그 어디에서도 2030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번 대선처럼 젠더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후보와 정당이 젠더 갈등을 앞세워 갈라치기만 한 선거는 없었다.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