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줄 불끈한 암릉에 붉은 노을 가득한 낙조

입력 2022-02-16 20:39
전남 진도 동석산에서 본 아침 풍경. 거대한 암봉 너머로 간척지가 펼쳐지고 멀리 진도항이 보인다.

전남 진도는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이다. 섬이 곧 산이라 할 만큼 남해안과 서해안의 섬들에는 산이 많은데 진도도 예외가 아니다. 본섬만 보더라도 중앙부의 첨찰산(485m)을 비롯해 동석산(219m) 남망산(164m) 등 산세가 아름답고 전망 좋은 산들이 많다.

동석산(銅錫山)은 진도 남쪽 지산면 심동리에 우뚝 솟은 산이다. 종 여러 개가 붙어 늘어선 모양새다. 가파른 절벽을 이루는 거대한 암봉 능선이 약 1.3㎞ 이어진다. 산 동쪽 6부 능선쯤에는 ‘마파람이 불면 은은한 종소리를 낸다’는 동굴이 위치한 종성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높이가 해발 200m 조금 넘을 정도지만 수려함만 놓고 보면 세상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산이다. 힘줄처럼 툭툭 불거진 암봉의 짜릿함과 함께 능선에서 펼쳐지는 장쾌한 조망이 압권이다.

큰 바윗덩어리 동석산의 절경에 매료돼 험준한 바윗길에 도전했다. 등산로는 하심동에서 출발해 미륵좌상암굴을 지나 동석바위전망대 칼바위전망대를 거쳐 동석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이후 종주 코스로 진행하면 석적막산 가학재 작은애기봉을 지나 국내 최고의 낙조 전망 포인트로 꼽히는 세방낙조휴게소에 닿는다. 4㎞ 남짓으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날개 펼친 독수리 같은 동석산 암봉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많은 이가 들머리로 삼는 곳은 종성교회다. 곧바로 울룩불룩한 근육질의 암봉을 만난다. 워낙 가파른 절벽이기 때문에 위험한 구간 곳곳에 철제 안전난간과 계단이 설치돼 있다. 초입의 암릉에서 뒤돌아보면 너른 간척지와 팽목항(진도항) 일대의 바다가 발아래 펼쳐져 있다. 미세먼지가 심해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청명한 날엔 완도와 보길도는 물론 흑산도와 제주도까지 조망된다고 한다.

급경사 바위를 딛고 올라서는가 하면 줄을 타고 아찔한 암벽을 등반한다. 칼날능선 구간은 너무 날카롭고 위험하기 때문에 왼쪽으로 우회할 수밖에 없다. 정상에 오르면 푸른 바다에 섬이 보석같이 박혀 있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수고를 보상해준다. 이어지는 북쪽 암봉의 자태도 유혹적이다.

바위구간을 다 통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러운 능선이다. 석적막산을 지나고 가학재에 닿는다. 작은애기봉에서는 세방낙조전망대 앞 다도해의 기암괴석 가득한 섬들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건너편 큰애기봉을 보면서 직진하다 왼쪽 세방낙조전망대 방향으로 하산한다.

세방낙조전망대에서 본 일몰.

세방낙조전망대에선 환상적인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전망대 바로 앞으로는 각흘도 곡섬 불도 같은 작은 섬들이 떠있다. 해 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해가 붉은 노을을 풀어놓으면 온 세상이 황홀한 빛에 물든다.

세방낙조전망대 주변은 ‘시닉(Scenic) 드라이브 코스’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줄곧 빼어난 풍경이 함께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당당히 뽑힌 길이다. 멀리 양덕도(발가락섬) 주지도(손가락섬) 광대도(사자섬) 솥뚜껑바위 등 기기묘묘한 형태의 섬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느긋하게 낙조를 감상하는 급치산전망대.

동석산 남동쪽엔 급치산(221m)이 자리한다. 이곳에 다도해 경관을 한눈에 품을 수 있는 낙조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호젓한 비대면 여행지다. 오르는 도로도 잘 닦여 있어 큰 품 들이지 않고 과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전망대 난간에 기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과 그 섬 사이를 오가는 배들을 보노라면 최고의 눈호강이다.

첨찰산 정상 봉수대와 진도기상대.

진도의 산에서 첨찰산을 빼놓을 수 없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정상 부근 진도기상대까지 포장도로가 놓여 있다. 차를 세워두고 100m쯤 걸으면 봉수대가 있는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첨찰산 아래 자리한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 최근 개보수 공사를 끝내고 깔끔해졌다.

산 아래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운림산방이 수묵과 담채로 그려낸 듯 정갈하게 안겨 있다. 소치는 운림산방을 한 폭의 그림처럼 꾸몄다. 작은 집 앞에 널찍한 연못(운림지)을 파고 한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 한 그루를 직접 심었다. 연못 물 위로 드러난 바위는 여백의 미를 살렸다.

그의 예술혼은 아들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을 거쳐 증손자 고손자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진도는 우리나라 남종화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여행메모
동석산 종성교회 출발 5시간 소요
개보수 공사 마친 운림산방 말끔

동석산은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로 진도읍내를 거쳐 임회농협가공공장을 지나자마자 지산 방면으로 우회전, 다시 인지리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찾아갈 수 있다. 801번 지방도로 연결돼 있다. 진도읍내에서 30분가량 걸린다.

과거 안전 문제로 천종사가 출발지로 애용됐지만 최근 철계단과 난간 등이 보강돼 위험이 크게 줄어든 종성교회를 들머리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 산행을 마친 뒤 세방낙조휴게소에서 심동리까지 군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세방낙조전망대 주변에 펜션들이 많다. 낙조를 즐기며 쉬기 좋다. 다만 인근에 맛집이 많지 않아 지산면이나 진도읍에서 먹고 들어가는 게 좋다.

운림산방은 최근 개보수 공사를 마쳐 가림막 없이 말끔해졌다. 대신 공사 기간 무료였던 관람료를 다시 내야 한다. 어른 2000원, 중고생·군인 등 1000원, 어린이 800원이다.

진도는 울금의 고장이다. 밥과 국, 찌개 등 다양한 요리에 울금을 이용한다. 뜸부기탕은 진도의 독특한 먹거리 중 하나다.


진도는 섬 전체가 문화의 보고다. 삼별초의 근거지와 관련된 용장산성(사진) 등 볼거리가 많다.





진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