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약물을 복용하거나 주사하는 행위인 도핑(doping)은 모든 스포츠에서 엄격한 규제 대상이다. 심장 흥분제, 근육 증강제 등의 약물은 인간의 신체 능력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키기 때문에 도핑은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칙이다. 금지약물은 선수의 건강을 해치고 심할 경우엔 생명까지 잃게 할 수 있다. 국제스포츠기구가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선수는 고의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출전 금지, 메달 박탈, 출전 제한, 영구 제명 등 중대한 불이익을 주는 이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에서 도핑 검사를 처음 도입했고, 99년 산하에 세계반도핑기구(WADA)를 창설해 감시 활동을 강화해 왔다.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 기간 중에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무작위로 선수들을 선정해 샘플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도핑이 적발되면 선수 생명에 치명타를 입는데도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선수들이 끊이지 않는다. 88 서울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서 칼 루이스와 세기의 대결을 펼친 벤 존슨,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 중국의 수영 영웅이던 쑨양 등 도핑으로 인해 몰락한 스타들이 부지기수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대형 도핑 스캔들이 터졌다. 러시아의 15세 ‘피겨 괴물’ 카밀라 발리예바의 도핑 소식이 알려져 충격파가 컸는데 스포츠계의 각종 분쟁을 중재하는 독립기구인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이 선수의 대회 출전을 허용해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CAS 측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었지만 반도핑을 강조해 온 스포츠계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결정이다. 도핑 규정을 어긴 선수의 출전을 허용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올림픽 정신의 중대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피겨 여왕’ 김연아는 CAS 결정이 알려진 14일 자신의 SNS에 “도핑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공평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CAS가 결정에 앞서 곱씹어 봤어야 할 대목이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