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산책할 겸 혼자 공원을 걷고 있는데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든 노래가 들려왔다. 길거리 공연하는 예술가의 목소리였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스팅의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를 부르고 있었다. 영화 ‘레옹’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오는 곡으로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명한 노래다. 부다페스트의 유럽 풍경이 더해져 마치 영화 속 주인공 마틸다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가 잠시 화분이라고 착각되는 상황이 좋았다. 어릴 때 연기를 배우면서 생긴 버릇인지, 인간의 기본적 본능인지 모르겠지만 살면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을 자주 느낀다.
단지 공원을 산책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심어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현금을 찾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 길거리 예술을 즐기고 난 뒤 감사 표시로 돈을 건네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 현금을 가져오기에는 시간과 거리가 애매했다. 아쉬운 마음에 그의 다음 공연을 알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 주소를 알아냈다. 긴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그의 계정에 접속했다.
그는 내가 느낀 것보다 훨씬 대단한 예술가였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의미의 대단함이 아니었다. 그는 유럽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신의 노랫소리를 알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에 오기 직전에는 영국에서 길거리 공연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공연할 때는 허가받지 못했는지 경찰에 큰 금액의 벌금을 물게 될 상황에 놓인 장면도 담겨 있었다. 자신은 살인범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노래할 뿐이라고 외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의 모험심과 실행력에 마음의 박수를 보냈다. 그의 다음 공연에 대한 일정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현금을 챙겨 다닐 것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