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제주도에 이주하며 바닷가에 집 4동을 지었다. 카페 1동, 펜션 2동에 우리 내외가 살 안채까지 각 별동으로 지었다. 마당은 잔디를 심고 동선을 따라 검은 화산석을 깔았다. 제주도에 오면 누구나 그렇게 마당을 꾸미고 싶다. 주택 시공자는 준공이 되면 떠난다. 중대한 하자가 아니면 부를 수 없다. 그때부터 주택 관리는 오로지 집주인 몫이다.
아파트에만 살던 나에겐 드라이버 두세 개, 망치, 펜치, 니퍼 정도의 연장이 있었다. 건물 외부에 수도 밸브가 2개 있었는데 그 꼭지를 각 2개로 만들어야 했다. 호스를 고정 연결할 꼭지가 하나 더 필요했다. 철물점에서 기역자 연결관과 연장용 토막, 수도꼭지, 단수테이프를 구입하고 이들을 조립하기 위한 멍키스패너와 플라이어를 샀다. 내 손으로 멋지게 T자형 수도꼭지 2개를 완성했다. 아내가 맥가이버라고 치켜세워줬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그럴듯한 공구를 산 건 전동드릴이 처음이다. 노란색 드릴. 머리맡에 두고 자고 싶을 정도로 뿌듯했다. 드릴은 지금도 손에 들고 다닐 정도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 콘크리트 벽, 화장실 타일 등에는 일정한 힘의 타격을 주며 돌아가는 해머드릴이 있어야 한다. 공구상회에서 해머드릴을 고르는데 점원이 내 행색을 보고 “일 년에 몇 번이나 쓰시겠어요”하며 배터리를 장착하는 휴대용이 아니라 작업 반경이 제한된 전선으로 연결하는 해머드릴을 권했다. 가격 차이가 컸다. 유용하게 쓴다.
돌담을 쌓은 뒤 남은 돌, 팬 곳에 메울 흙, 베어낸 나뭇가지 등 물건을 옮기기 위해 손수레를 샀다. 높은 곳 작업을 위해 사다리를 사고 더 높은 곳에 필요해 더 긴 사다리를 하나 더 샀다.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에는 페인트, 오일스테인, 래커스프레이 통이 10개가 넘고 접착·방수 용도로 쓰는 실리콘은 색깔별로 수를 셀 수도 없다. 주택에 실리콘이 이렇게 많이 사용되는 줄 몰랐다. 원래 자연의 영역에 인간이 들어온 것을 저지하듯 잡초가 일 년 내내 번져 제초제 살포용 5ℓ들이 분무기도 샀다.
마당에 잔디가 길게 자랐다. 공구가 자꾸 늘면서 예초기는 절대 사지 않겠다 다짐했다. 기름통을 메고 엔진을 돌리는 예초기를 감당하기도, 보관하기도 자신이 없었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쓴다고. 오일장에서 낫을 샀지만 해보지 않은 낫질은 어림없었다. 양손으로 쓰는 큰 가위 같은 커터를 샀다. 그건 나무 다듬는 데 쓰는 거였다. 동네 사람에게 부탁해 풀을 몇 번 벴다. 결국 전선으로 연결하는 가벼운 전동예초기를 샀다. 그 후 철관을 자르거나 돌을 다듬는 그라인더, 나무를 자르는 절단기, 먼지 터는 송풍기, 진공포장기까지 봇물 터지듯 공구가 늘었다.
아버지는 광에 여러 가지 연장과 공구를 가지런히 걸어 보관했다. 나는 제자리에 원위치시키는 것을 전제로 아버지 공구를 공유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늘어나는 공구, 낚시 장비 때문에 나도 곧 아버지의 광과 같은 창고를 짓게 되지 않을까 운명 같은 예감이 든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