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마나 코픽스… 시중 은행들은 고금리 대출 폭리 [스토리텔링경제]

입력 2022-02-15 00:04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옥죄기 정책과 미국발 금리인상 등 대내외 요인이 겹치면서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미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6% 턱밑까지 올라왔고, 신용대출은 5%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은행들은 대출금리 산정 기준으로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활용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대출금리는 시기에 따라 코픽스와 관계없이 수배씩 널뛰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CD(양도성예금증서)금리가 대출금리 지표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지적에 코픽스가 도입된 지 12년을 맞았지만, 오히려 CD금리보다 은행에 더 유리한 금리지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14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코픽스(신규 취급액 기준)는 연 1.69%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발발한 2020년 1월(1.60%) 이후 최고치다. 코로나19 기간 0.81% 수준까지 내려갔던 코픽스 금리가 다시 상승하며 대출금리도 함께 오르고 있다. 2%대 중반까지 내려갔던 주택담보대출(변동금리·분할상환) 평균금리는 이날 기준 3.58~5.23%을 나타내고 있다.

문제는 코픽스가 대출금리 지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픽스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대출금리는 확연하게 다른 경우가 대표적이다. 최근 코픽스 수준이 비슷한데도 대출금리가 차이가 나거나, 코픽스는 내렸는데 대출금리는 오르는 기현상도 적지 않게 관측된다.


은행연합회가 팬데믹 기간(2020년 1월~현재) 동안 공시한 신규 코픽스 변동 추이를 보면 이러한 문제점이 잘 나타난다. 코픽스는 2020년 1월 1.60%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1.69%)와 0.09% 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2020년 1월 당시 연 2.964%에 불과했던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현재 최고 5.23%까지 올랐다. 은행이 대출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에는 크게 차이가 없는데, 정작 고객에게 내미는 대출 청구서에는 고금리를 제시하며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기간을 넓혀보면, 이날 기준으로 가장 최근 신규 코픽스가 최고치를 기록했던 건 2019년 7월(1.78%)이었다. 하지만 이 당시 5대 시중은행의 평균 대출금리는 2.772%에 불과했다. 현재(3.58~5.23%)와 비교하면 코픽스가 내렸음에도 대출금리는 최고 배 가까이 오른 이해 못 할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5~6월의 경우에는 신규 코픽스가 0.82%로 변동이 없었지만 평균 대출금리는 2.772%에서 2.748%로 0.024%포인트 올랐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과거 CD금리를 대출금리 지표로 사용하던 시절과 결과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CD금리는 은행이 단기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정기예금증서로, 2010년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지표금리로 사용됐다. 하지만 CD금리는 담합이나 시세 조작에 매우 취약하다는 치명적 결점이 있었다. 실제 돈의 흐름뿐만이 아니라 은행들이 부르는 호가를 반영해 금리를 산출하다보니, 지배력이 큰 시중은행 몇 곳이 유리한대로 대출금리를 책정해도 구조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당시 시중금리가 내려가는데도 은행들이 CD금리를 의도적으로 높게 유지해 대출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자, 당국은 2010년부터 코픽스를 개발해 2012년부터 지표금리로 활용해왔다.

해외의 경우 실제 체결된 거래자료를 바탕으로 산출되는 ‘RFR(무위험지표금리)’을 지표금리로 활용하고 있다. 조작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다양한 금융기관이 참여해 시장을 효과적으로 대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국 금융시장의 호응이 높은 편이다.

코픽스는 은행이 대출금리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은행연합회가 5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우리·NH농협·신한은행)과 기업·SC제일·씨티은행 등 8개 은행의 정기 예·적금, 상호부금, 주택부금, 금융채, 양도성예금증서(CD) 등 8개 수신상품 자금의 평균 비용을 가중 평균해 산출한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하는 은행에서 취급되는 ‘돈의 가격’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코픽스는 대출금리를 산정하는 지표로 넓게 활용되고 있다. 코픽스가 상승하면 대출을 내주는 비용이 올랐다는 뜻이기에 대출금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위에서 보듯 코픽스가 대출금리 지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명확한 지표금리가 있음에도 실제 대출금리가 널뛰기를 반복하는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와 이를 이용한 은행의 ‘대출 폭리’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당국은 폭증하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한다는 이유를 들어 시장에 나가는 대출총량을 규제해왔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대출 수요를 낮추기 위해 우대금리를 폐지하고 가산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렸는데, 금융당국은 이를 사실상 묵인해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대출은 곧 상품”이라며 “파는 상품의 개수(대출총액)을 정부에서 강제로 줄였으니 가격(대출금리)을 올려 수지타산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출금리는 기본적으로 지표금리도 반영하지만 수요·공급 원칙에 의해 결정되는 면이 크다”며 “당국이 대출 총량규제로 공급을 줄였으니 금리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지표금리라는 것은 금융소비자들이 자신의 대출금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코픽스가 대출금리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