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이코노 아웃룩] 우크라이나 둘러싼 미·러 싸움에 등 터지는 글로벌 경제

입력 2022-02-15 04:06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예상 침공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나오는 등 서방과 러시아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냉전시대 두 초강대국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 충돌은 곧 ‘3차대전’을 의미하므로 그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시장이 우려하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경제제재와 그 후폭풍이다. 코로나19사태로 촉발된 고 인플레이션 현상에 따른 세계 경제난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러 무력충돌보다 무서운 경제제재?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러시아 군대의 대규모 무력시위 조짐이 포착되자 이를 언론에 흘리는 등 과거엔 비밀로 치부해 온 정보기관 첩보 사항들을 이례적으로 적극 공개하고 있다. 전쟁 억지를 위한 분위기 환기 차원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도발이 이뤄질 경우 군사적 대응 대신 ‘신속하고 단호한’ 경제제재를 단행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 입장에선 군사대결보다는 경제제재가 우크라이나를 전진기지로 하는 러시아의 서진(西進)을 막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취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측근과 기관 등에 대한 경제제재로만으로도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3%나 감소할 정도의 영향을 끼친데서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지난 연말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우려에 따른 제재 조치 거론만으로 이미 루블화 가치는 달러와 대비 10%가량 떨어져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의 보도를 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엔 아예 러시아 경제를 무기력한 상태로 끌어내릴 초강력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 1980년대말~90년대초 소련을 붕괴시켰던 ‘민생고’를 소환해 러시아 국민들로 하여금 반푸틴 정서를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주요 방안으로 1000억달러 이상 러시아 차관 불허 및 국부펀드 매입 금지, 중요산업에 대한 기술 유출 금지, 푸틴 측근 자산 동결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이 마련 중인 우크라이나 원조 법안에 포함된 3개은행 제재내용이 ‘역대급’ 방안으로 회자되고 있다. 재무부의 잠정 제재 리스트에 포함된 러시아 국영은행 스베르뱅크와 VTB를 제재할 경우 러시아인들의 모기지 대출 거래 등이 막히는 등 돈줄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들 은행 제재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올 것을 우려해 달러 결제망 퇴출 같은 극단적 조치에는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국제유가와 ‘자원 무기화’ 조짐

다만 러시아 경제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가스와 석유 수출 등 에너지산업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제재를 고려하지는 않는 눈치다. 에너지 산업 제재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억지하는 데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겠지만 거꾸로 유럽과 미국 경제에도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러시아가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항해 맞대응할 경우 유럽으로의 러시아 가스 운송이 중단돼 가뜩이나 코로나발 인플레에 시달리는 세계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저성장)의 늪으로 빠트릴 수 있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의 주요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인 사이버공격도 우려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극단적인 경우 서부텍사스산중유(WTI)가 배럴당 150달러 까지 치솟을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유진투자증권은 14일 러시아 리스크로 발생할 수 있는 원유 수급 차질 규모는 하루 550만 배럴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러시아만 일방적으로 당할 수 없다는 점이 푸틴의 셈법에도 반영돼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그래서 나온다. 지난 13일(현지시간) 푸틴과 바이든의 전화회담이 진전이 없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러간 갈등 장기화로 인해 90달러를 상회하는 유가 흐름이 고착화될 경우 올 하반기로 기대되던 물가 압력 둔화를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원유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의 경우 정책운용에 부담이 커진다.

그나마 아직 다행인 것은 올들어 하루 국제원유 공급이 수요를 90만 배럴 초과하는 여유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루 140만배럴 공급이 수요에 비해 모자랐던 점과 반대 상황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예정된 증산 및 전략비축유 방출 등에 기인한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선을 넘어선 만큼 관련 이슈는 현재 유가 수준에 어느정도 반영되어 있다”면서 “높은 유가수준에 따른 미국의 산유량 증가, 연내 OPEC의 감산 해제 기대 등을 고려하면 타이트한 수급 여건도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영증권은 보고서에서 최근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우크라이나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고점보다 아직 낮은 상태인데다, 지난주말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가격도 강보합이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것을 조언했다. 러시아발 지정학적 긴장은 통상 유럽 천연가스 공급 우려로 연결되는데, 시장에선 대대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여전히 낮게 본다는 것으로 전쟁 자체에 대한 불안보다는 전쟁 위협이 자원무기화 구실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곡창지대이자 우라늄 망간 석탄 티타늄 등 지하자원의 막대한 보고로 꼽히면서 최근 농산물 ETF와 금속 및 광산 관련 ETF로 자금이 급속히 유입되고 있다.

신영증권 박소연 연구원은 “군사적 충돌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그리고 이로 인한 원자재 등 상품(Commodity) 인플레 가능성이 (관건)”이라며 “러시아와 서방이 직접 충돌하진 않더라도 이란에 가해졌던 경제제재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자원 무기화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