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이 화제다. 당장 탈모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분들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내건 이 공약은 희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비판과 문제 제기도 만만치 않다. 탈모 치료제 적용에 소요되는 재정 자체는 큰 문제라고 할 순 없다. 그보다는 ‘업무 및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병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에서 제외한다’는 기본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 그게 문제다.
건강보험제도 도입으로 아플 때 국민 누구나 진료비에 대한 큰 걱정 없이 병의원을 찾을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등 국민 건강이 크게 향상됐다. 코로나 대응 및 검사·백신 접종·입원 등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 공약이 국정 과제가 된다면 작은 구멍 하나가 거대한 댐을 무너뜨릴 수 있듯이 건강보험제도를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 등에서는 미용 목적, 본인 희망의 건강검진 등을 비급여 항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에 따라 성형 수술이나 코골이 수술 그리고 탈모 등은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국민 건강보장을 시행하는 나라들은 모두 이런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래야만 전 국민 건강보장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건강보험 급여 원칙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해야 한다. 곧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질병이나 의료비 지출 부담이 큰 질환 등으로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 이 원칙의 범위에서 그리고 건강보험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에 대해선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러나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은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성형 수술·코골이 수술 심지어 쌍꺼풀 수술 등을 급여화하지 않을 명분을 찾기 어렵게 된다.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에 의해 건강보험제도의 댐에 작은 구멍 하나가 뚫리게 되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종종 초능력이라도 가진 듯이 또는 마술사라도 된 듯이 다른 후보들이 하지 못 하는 일을 자신만은 할 수 있는 것처럼 무모한 공약을 남발하곤 한다. 그러나 그 초능력·마술은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발전을 해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선은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후보들의 비전 경쟁의 장이 돼야 할 것이다. 정반대로 나라 근간을 허물어서라도 국민 환심을 사겠다는 경쟁이 시작되면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가 쓰나미처럼 건강보험제도를 덮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료 납부층은 감소해 수입은 줄어드는데 보험료 사용층이 빠르게 늘어나 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이번 대선을 바라보면서 국가의 근간이 더 든든해지고 국민 삶의 질이 더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싶은 것은 온 국민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걱정되고 불안하고 초조한 그러한 느낌이 아니라.
이홍균 전 건강보험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