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으로 일군 ‘눈물의 은메달’… 최민정, 이젠 ‘금빛 미소’

입력 2022-02-14 04:07
한국 여자 쇼트트랙 간판 최민정이 지난 11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전에서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태극기를 건네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베이징=권현구 기자

지난 11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최민정의 컨디션은 좋지 못했다. 준준결승에선 얼음에 스케이트 날이 걸리며 넘어질 뻔했고 준결승에선 크리스틴 산토스(미국),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에 이어 조 3위에 그치며 기록 경쟁 끝에 가까스로 결승에 올랐다.

쉽지 않아 보인 결승 레이스였지만 최민정은 최민정이었다. ‘역대급 선수’ 계보를 잇는 에이스답게 경기 막판 스퍼트로 단숨에 2명을 추월했다. 예선에서 세계기록을 세운 수잔 슐팅(네덜란드)과 사진 판정까지 가는 경합을 펼치며 1분28초443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민정은 결승선을 통과 이후 링크를 돌면서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방송 중계 화면으로도 들릴 만큼 거친 숨소리와 함께 통곡하듯 흐느껴 울었다. 이영석 코치와 포옹하고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이유빈 등 동료 선수, 코치진이 계속해서 위로를 건네며 토닥였다. 그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했던 최민정이라서 더 궁금하고 안타까운 눈물이었다.

최민정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저도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게 생각이 많이 나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오늘 결과가 좀 힘든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는 의미라 보람됐던 것 같다”며 “지금은 기뻐서 눈물이 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 같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1000m는 최민정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결승에서 팀 동료 심석희와 충돌해 넘어지며 메달 획득에 실패한 종목이었다. 이후 쇼트트랙 내홍으로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심석희가 고의로 최민정과 부딪쳤는지를 두고 법정 공방까지 벌어졌다. 최민정 등 동료와 코치들을 험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심석희는 징계까지 받았다.

최민정은 “‘최대한 넘어지지 말고 버티자’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버텼다.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했더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끝까지 승부해 메달을 목에 건 최민정으로선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레이스였다.

최민정은 평창 이후 세계선수권에서 4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최강자임을 입증했지만 계속되는 부상으로 부침을 겪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까지 단 한 번도 월드컵 시리즈를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다. ‘부상만 없으면…’이라는 아쉬움 속에 올림픽 직전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발목과 무릎을 다쳐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애를 먹었다.

최민정은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경기 사진과 함께 “두 번째 올림픽, 세 번째 메달,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앞으로 웃을 일만 :)”이라고 덧붙였다. 16일 1500m에서 또 한 번 자신과 싸움에 나선다. 최민정은 2분14초354로 이 종목 세계기록 보유자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