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조력자살 논란 속 “죽을 권리란 없다”

입력 2022-02-14 03:02 수정 2022-02-14 03:02
존엄사, 안락사에 이어 조력자살에 대한 논쟁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포르투갈 시민들이 2018년 5월 수도 리스본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간의 존엄성이냐 생명의 고귀함이냐. 이른바 ‘조력자살’(또는 조력죽음)에 대해 교계도 묵직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조력자살은 의료 관계자 등에게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힘(또는 요청)으로 직접 약물을 복용 혹은 주사한다는 점에서, 의료진이 적극 개입해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와 구별된다. 한국에서는 제한적인 존엄사가 가능하지만 조력자살은 처벌 대상(촉탁살인)이다.

최근 암 투병으로 고통받던 20년 지기 친구의 요청에 살해를 저지른 4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 감형됐다는 보도는 조력자살을 향한 사회 인식이 일부 반영된 측면도 엿보인다.

13일 외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재 이탈리아 의회에서 논의 중인 조력자살 합법화에 대해 “죽을 권리란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는 죽음을 앞둔 사람과 함께해야 하지만, 죽음을 유발하거나 자살을 도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조력자살 합법화가 잇따르고 있다. 2001년 네덜란드가 가장 먼저 안락사와 함께 조력자살을 허용한 이래 벨기에(2002년), 룩셈부르크(2009년)가 합류했다. 이어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도 합법화 조치를 취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를 비롯해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일부 주도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계와 목회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자살에 대한 기본 원칙처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고귀하다’는 입장을 우선한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와 그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실제 사례를 접한다면 고민스러운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대표 조성돈 실천신학대 교수는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절대 가치는 유지돼야 한다”면서도 “(죽음에 대한) 자기 선택권에 대한 범위를 어떻게 둬야 할지 사회 각 분야에서 여러 각도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회장인 조주희 성암교회 목사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는 시각과 생명의 결정권자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라는 관점이 충돌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양쪽 입장을 절충한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윤리·공공정책센터의 라이언 앤더슨 대표는 줄곧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고통을 최소화하는 죽음을 맞도록 돕는 호스피스 제도 및 시설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30년간 호스피스병원에서 봉사하는 샘물호스피스선교회 이사장 원주희 목사는 “현재 말기암 환자로 국한된 ‘입원형(호스피스 시설)’ 입소 대상을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다른 질환의 말기 환자 등으로 확대한다면 환자의 고통을 줄이며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