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을 들고다니는 피아니스트, 자가격리 감수하고 내한

입력 2022-02-14 04:06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위쪽)과 뉴욕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이 7일간의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내한 공연을 한다. 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 짐머만은 25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등 4개 도시에서 6회 공연을 연다. 뉴욕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은 20~21일 수원 등 2개 도시에서 2회 공연을 연다. ⓒ Felix Broede·ⓒ Zach Mahone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65)은 클래식계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18살이던 1975년 제9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독주회, 실내악, 오케스트라 협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연주를 선보여 왔다. 완벽주의와 엄격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그가 내놓은 음반들은 대부분 명반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완벽주의는 모든 공연에 자신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그는 연주 레퍼토리에 맞춰 세심하게 조율한 자신의 피아노를 각국 콘서트홀로 직접 운반한다. 최고의 연주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최소화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의 이런 모습은 청중들에게 피아노의 복잡하면서도 세밀한 악기 특성이 연주자에게 큰 영향을 끼침을 깨닫게 한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존F케네디 국제공항에서 그의 피아노가 몰수됐다가 폐기 처분되는 일이 있었다. 피아노의 부품을 접착한 풀에서 폭발물 냄새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그는 콘서트홀에서 주로 사용되는 스타인웨이D 모델 피아노의 건반과 액션(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리게 하는 장치)을 가져와 현지에서 조립해 연주하는 방식을 택했다. 2003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건반과 액션을 두 세트 가져와 예술의전당 피아노에 조립해서 연주했다.

연주마다 피아노 조율사를 데리고 다니는 그는 자신의 건반과 액션을 공연장의 피아노에 조립한 뒤 조율사와 함께 공연장의 특성에 맞게 조율한다. 그가 피아노의 구조 및 소재, 음향학에 조예가 깊은 것은 학생 시절 고국인 폴란드에서 물자 조달이 어려워 피아노 부품을 직접 제작·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스위스 바젤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후에는 스스로 피아노를 제작하거나 스튜디오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짐머만이 2019년 리사이틀에 이어 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2018년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하는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잠깐 무대에 선 것을 빼면 16년 만에 성사된 당시 리사이틀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을 기록했다. 서울 2회, 인천 1회로는 그의 내한을 기다려 온 클래식 애호가들을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 올해는 연주 횟수가 늘어나 25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대구 부산 대전 서울 등 4개 도시에서 6회가 열린다. 연주 레퍼토리는 바흐의 파르티타 1번 BWV 825와 2번 BWV 826,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20개의 마주르카 Op 50 가운데 13~16번,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3번 Op 58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며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은 자가격리 면제 없이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클래식 애호가들은 짐머만의 공연도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하지만 공연 기획사인 마스트 미디어는 최근 짐머만이 7일간의 격리를 감수하고 국내 리사이틀 투어를 진행한다고 최종 발표했다.

마스트 미디어 관계자는 “짐머만이 무엇보다 한국 팬들과 만나고 싶어했다. 이번에 여러 도시를 도는 한국 투어를 취소하는 것보다 격리하더라도 내한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짐머만은 완벽한 연주를 위해 격리 기간 피아노를 조율하고 연습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짐머만의 국내 투어에 앞서 뉴욕 필하모닉(뉴욕필) 스트링 콰르텟도 20~21일 통영과 수원 공연을 위해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내한한다.

뉴욕필 스트링 콰르텟은 미국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필 악장과 현역 파트 수석들로 이뤄졌다. 악장 프랭크 후왕, 제2 바이올린 수석 치엔치엔 리, 비올라 수석 신시아 펠프스, 첼로 수석 카터 브레이 등 4명의 연주자가 악단 창립 175년을 기념해 2017년 결성했다. 결성 이듬해 내한해 4개 도시에서 5회 공연을 펼치며 호응을 얻었다.

올해 내한 공연에선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혼란스러움이 음악을 통해 치유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아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19번 ‘불협화음’, 조엘 톰슨 ‘광기에 대답하며’, 베베른의 ‘느린 악장’, 베토벤 현악사중주 11번 ‘세리오소’다.

올해 공연이 열리는 경기아트센터 측은 “뉴욕필 스트링 콰르텟이 자가격리를 위해 현지의 공연도 취소했다. 2018년 첫 내한 당시 한국 투어에서 느꼈던 젊은 관객들의 공연 집중도와 뜨거운 반응을 잊지 못했던 이들이 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 다시 한번 그 뜨거운 감동을 느끼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